이번 광복절 사면이 유력한 이명박 전 대통령(왼쪽)과 윤석열 대통령. <한겨레> 자료사진
[아침햇발] 강희철┃논설위원
“미래 지향적으로 가면서도 현재 국민의 정서까지 신중하게 감안해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명박(MB)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사실상 예고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리기 전이라 사면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치로 확인해준 셈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엠비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 쪽에 요청했다. 말이 요청이지 대선 승리의 배경을 업고 여론을 동원해 압박까지 했다. ‘윤핵관’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선 직후 “문 대통령이 퇴임 전 결단을 내려야 될 사안”이라며, 엠비와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같이 사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전사’까지 있으니, 이젠 구실과 계기만 만들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그러나 명분과 실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여론조사를 봐도 ‘엠비 사면 반대’가 여전히 응답자의 50%를 넘는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시사저널> 조사에서도 반대가 54.65%에 이르렀다. 권력을 이용해 1천만원 넘는 옷가지를 얻어 입은 그런 유의 행적이 국민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지금은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있는 상태라 치료 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팬덤도, 지역적 지지 기반도 없는 엠비는 윤 대통령 지지율 반등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한마디로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그런데 왜 굳이 사면을 해주려고 저리 애를 쓰는 것일까. 해답의 단서는 ‘검사 윤석열’에 있다.
“거 왜 그 양반은 아들을 거기로 보내서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올리나.”
2017년 11월의 어느 날 통화에서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는 투로 짜증을 낸 사람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고, ‘그 양반’은 엠비를 지칭한 것이다. 때마침 시민단체 고발로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엠비 큰아들이 다스의 중국 법인 9곳 가운데 4곳을 ‘접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지 4개 법인을 합친 당시 매출이 5천억원 이상이었는데, 최대주주인 엠비 큰형 이상은씨의 아들을 제치고 1% 지분도 없는 엠비 큰아들이 법인 대표가 된 것이다. 수사에서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전보다 훨씬 커진 상황이라 윤 지검장이 잠시 짜증을 낸 것 아닐까 생각한다면, 또 다른 퍼즐 조각들과 맞춰봐야 한다.
“고발장 들어왔다고 칼춤 출 일 아니에요. 토끼몰이 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어요.”
2017년 12월 초 엠비는 횡령과 조세포탈 등 혐의로 추가 고발됐다. 그 무렵 통화에서도 윤 지검장은 뜻밖에 수사 신중론을 폈다. 그러고는 사건을 특수부가 아니라 ‘명예·개인정보범죄전담부’인 형사1부에 배당하고, 상당 기간 고발인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검찰 안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사건 배당”이란 반응이 흘러나왔다. 고발 사건을 아예 재경지검으로 이송하려다 ‘사건 관할’이 맞지 않아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 무렵 윤 지검장은 이런 말도 했다. “다스는 더 들여다볼 여지가 없어요. 의혹은 규명해야 하지만, 어떻게 뼈 바르듯 하겠나.”
2007년 엠비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꾸려졌던 이른바 ‘비비케이(BBK) 특검’은 대통령 취임 나흘 전 무혐의로 결론을 냈다. 그때 특검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훗날 “아주 시원하게 봐줬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당시 특검 파견 검사 중엔 윤 대통령도 있었다. 엠비 정권에서 그들은 한결같이 꽃길을 걸었다. 윤 검사의 화양연화도 엠비 집권기와 정확히 겹친다. 대다수 검사가 바라지만 극소수만 선택받는 특수부 요직들, 예컨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을 두루 섭렵한 것이 이 무렵이다. 나중에 총장 시절 ‘검찰의 중립성을 어느 정권이 잘 보장했느냐’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그는 “(엠비 정권 때가) 상당히 쿨했다”고 답변했다.
윤 대통령이 쿨하다고 평가한 엠비는, 범죄 사실을 보면 전혀 쿨하지 않다. 무엇보다 재임 중 110억원에 이르는 뇌물을 받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치부의 수단으로 삼은 셈이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자 곧바로 성명을 내어 “법치가 무너졌다. 대법원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했다”며 대놓고 판결 자체를 부정했다. 그런 사람을 사면하겠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는 제1 국정목표를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로 정했다. 앞뒤가 도무지 맞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즐겨 말하는 공정, 상식, 정의, 법치 같은 거룩한 말들이 또다시 오욕을 감내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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