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회의실에서 열린 ‘만 5살 초등학교 취학 학제개편안에 대한 영유아 학부모 긴급간담회’에 학부모들이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이게 뭐야?” 어린아이가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이자, 삶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의 시기를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질문이다. 즉,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것. 이 이름(명칭)은 어른들이 생각하듯 대상의 본질과 관계없는 자의적 ‘기호’가 아니다. 아이에게 ‘이름’은 처음부터 대상이 갖고 있던 특성이다. 마치 빨간 껍질 속에 하얗고 단단한 과육이 들어 있고 아삭아삭 씹히며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것이 사과의 특성이듯이, ‘사과’라는 이름도 그 대상의 본래적인 특성이다. 그래서 끝없이 묻는다. ‘이게 뭐야?’
네댓 살이 되면 질문이 바뀐다. ‘엄마는 왜 나보다 나이가 많아? 나무는 왜 흔들려? 해는 왜 저녁엔 안 보여?’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의 기원이나 존재 이유, 질서에 대한 온갖 기상천외한 가설을 세우고 막힘없이 묻는다.
여기가 인간이 동물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배고픔, 아픔, 공포, 기쁨을 나타내는 자기표현이나 상대방에 대한 경고, 위협, 허용과 같은 신호 행위는 동물에게도 보인다. 하지만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이름으로 사물을 대신하는 사유능력은 인간에게만 나타난다. 하지만 다섯 살 아이는 세계에 대한 개념을 스스로 세워나가는 게 아니다. 그가 딛고 선 사회, 역사, 문화라는 발판 위에 성립한다(비고츠키, <생각과 말>).
그러다 보니, 문득 의문 하나가 남는다. 만 5살 입학은 ‘과도한 경쟁과 선행 학습, 사교육’에 어린아이들을 몰아넣는 일이다. 이런 반교육적 학교는 여섯 살부터는 견디거나 허용될 만한 곳인가? 학교는 이 세계에 다가가는 배움의 공간은 될 수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