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지인이 조심스레 말한다. “밤새 누가 벽을 두드리더라.” 별일 없는 이 동네에 그럴 리 없는데 이상하다. 가만히 들어보니 벽시계가 내는 소리였다. ‘틱, 틱, 틱’ 하는 저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지냈다. 뭔가를 알아채는 감각은 한곳에 얼마나 눌러앉아 있었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섬세함은 이방인의 전유물. 안주하는 자에게선 찾을 수 없다.
‘열쇳말’은 한 사회의 문화나 역사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다. 외신에 다시 등장한 ‘banjiha’(반지하)란 말은 한국의 사회적 격차와 주거 형태의 문제점을 단박에 꿰뚫는 열쇳말이리라. ‘반지하’에 쓰인 접두사 ‘반(半)-’은 ‘절반’이란 뜻도 있지만, ‘~와 거의 비슷한’이란 뜻도 있다. ‘반나체’는 절반만 벗은 게 아니라, 거의 다 벗은 상태. ‘반죽음’도 거의 죽게 된 상태이다. ‘반지하’도 ‘절반이 지하’인 집이 아니다. 지하실과 다름없는 집. 끽해야 아침 한때 등이 굽은 햇빛이 지나치는 집이다.
나의 20대 딸은 밥상에 김이 없어도 울고, 있어도 운다. 밥을 아귀차게 잘 먹다가도 눈물을 뚝뚝 흘린다. 내년 봄,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얼마 못 가 이 ‘김’을 못 먹게 되지 않냐고. 그러고 보니 일본 시민단체와 교류하는 선생한테 ‘안전한 한국산 다시마 좀 보내달라는 연락이 일본에서 온다’는 얘기도 들었다. 딸에게 ‘김’은 우리의 파국적 상황을 예견하는 열쇳말이다.
나는 이 세계의 아픔과 모순을 어떤 열쇳말로 알아채고 있을까. 쩌렁쩌렁 울리는 저 시곗바늘 소리도 못 알아채는 이 무감각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