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심심한 사과’에 ‘난 하나도 안 심심해!’라 하여 일어난 소란이 일주일이 넘었으니 차분히 따져보자. 한심해할 일만은 아니고, 도리어 인간이 말의 의미를 어떻게 알아가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손뼉 칠 일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도 그랬다. 악한 게 쌓일수록 결국 좋은 시절이 온다는,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그러니 이 어둠을 참고 견디라는 말로 들렸다. 아뿔싸, 다른 뜻의 ‘구축’이 있었고, 정반대의 뜻이었다. 나쁜 게 좋은 걸 몰아낸다!
모든 존재가 그렇듯, 단어도 홀로 있으면 의미가 미분화 상태이다. 일정한 맥락 속에 놓일 때 비로소 꽃이 핀다. 생소한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배경지식을 동원해 그 뜻을 추적한다. 우리의 ‘해석’ 행위는 계산기처럼 각 단어의 의미를 미리 정확히 알고 나서 이들을 합해나가는 게 아니다. 경험, 상상, 추리를 바탕으로 한 도약에 가깝다. 넘겨짚기, 또는 눈치로 때려 맞추기랄까?
예컨대, ‘우리 팀이 3연패를 달성했다’와 ‘우리 팀이 7연패에 빠졌다’에 쓰인 ‘연패’가 앞뒤 맥락이나 선수들의 표정으로 보아 전혀 다른 상황일 듯하고, 웃으며 ‘노고에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라고 할 때와 고개를 숙이며 ‘이번 사태에 사의를 표합니다’라고 할 때의 ‘사의’가 다른 뜻이라고 추측한다. 어휘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지만, 맥락과 상황이 던지는 작은 실마리로 의미를 추리하는 탐정의 마음이 작동하는 것이다. 거기엔 실패도 있고, 오역도 있고, 도약도 있는 거다. 우리 정신은 이 세계를 향해 영원히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