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할까? 말까?’ 방학 내내 오락가락했다. 출석을 부를 때 ‘예’가 아닌 ‘응, 어’로 대답하는 놀이만으로도 학생들은 안절부절못했는데, 이런 전면적 실험을 감당할 수 있을까. 반발심에 튕겨나가거나 나를 ‘또라이’로 여길지도 모르지. 그래도 하자! 오늘부터 수업시간에 ‘평어’를 쓰기로 한다.
<예의 있는 반말>이란 책에서 제안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첫째, 모든 호칭은 이름만 부르는 것으로 통일. 뒤에 따로 뭘 붙이지 않는다. ‘철수야, 철수씨, 철수님’이 아니라 ‘철수’라 한다. 학생들도 나를 ‘선생님’이 아니라 ‘진해!’라 부르면 된다(아, 떨려). 둘째, 모든 존대법을 걷어내고 반말로만 대화하기. 학생들은 나에게 ‘숙제가 뭐야?’라 할 것이다(아, 무서워). 존대법(높임법)은 모든 문장에 상대나 언급되는 대상이 나보다 높은지 낮은지를 반드시 표시하라는 규칙이다. 평어는 존댓말과 반말이라는 수직구조를 허물 것이다.
평어를 쓰려니 바꿀 게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수업방식을 ‘강의’가 아닌 ‘대화’로 바꿔야 한다. 혼자 떠들면, 그건 선생이 반말로 수업하는 것밖에 안 된다. 학생들의 평어를 들어야 하니, 나는 말을 줄이고 학생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혼란과 모색, 초월을 겪는지 보고 싶다.
평어 사용은 우리가 동료로서 갖춰야 할 친밀감과 함께 적절한 거리 확보를 통한 평등의 감각을 느껴보자는 거다. 위계적 문법체계를 의지적으로 내려놓았을 때 우리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패도 좋다. 교실은 딴딴한 댐을 무너뜨릴 못과 망치를 만드는 실험실이자 엉뚱한 짓을 결행하는 아지트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