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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한가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 이봉현

등록 2022-09-08 18:00수정 2022-09-09 02:40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용골자리 성운. 지구에서 7600광년 떨어진 이 성운은 태양보다 몇배 더 큰 무거운 별들의 고향으로, 우리은하에서 가장 크고 밝은 성운 가운데 하나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용골자리 성운. 지구에서 7600광년 떨어진 이 성운은 태양보다 몇배 더 큰 무거운 별들의 고향으로, 우리은하에서 가장 크고 밝은 성운 가운데 하나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모처럼 거리두기 없는 추석. 온 가족이 둘러앉은 밥상머리 말길에 검찰 소환장을 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밀어 넣을지, 논문 표절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의 김건희 여사를 올릴지를 두고 여야는 탁자 밑에서 다리 차기를 했다. 욕하면서도 외면하지 못하는 게 정치라지만 모진 태풍이 헤집고 간 자리에서 맞는 고물가 추석, 감흥 없는 정치 얘기를 길게 하고픈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칫하면 거실 분위기만 싸해진다.

이럴 땐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자. 한층 높아진 창공에 어둠이 내리면 아파트 동들 사이로, 고향 앞산의 엷은 구름 위로 보름달이 얼굴을 내밀리라. 중년의 애창곡 ‘제주도 푸른 밤’ 가사처럼, 우리는 부쩍 얇아진 느낌의 월급봉투에, 문 딱 닫고 들어가는 아파트 생활에, 중독처럼 몰입하는 스마트폰 화면에 붙들려 머리 위에 달과 별이 있는 걸 잊고 살지 않는가.

달은 약 45억년 전에 화성 크기의 천체가 지구에 부딪혔을 때 깨져 나간 파편이 뭉쳐 만들어졌다. 돌과 먼지가 지금 보는 공 모양의 덩어리가 되는 데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한다. 달에 무언가 살고 있으리란 꿈은 사라졌지만, 기후위기와 자원 고갈로 망가져가는 지구의 구원자로 새롭게 조명된다.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50년 만에 인간을 달에 보내고, 상주 기지까지 만들려는 미국의 ‘아르테미스’(달의 여신) 계획은 그 첫 로켓 발사가 지난달에 이어 이달 3일(현지시각)에도 기술적 문제로 연기됐다. 유인 달 탐사를 다시 추진하는 것은 남극에 얼음 형태로 물이 있는 게 확인된데다, 달에서 뭔가를 가져올 수 있을 만큼 기술적 가성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달에는 1g으로 석탄 40톤의 에너지를 내는 핵융합 발전의 원료 ‘헬륨-3’가 100만톤 이상 있고, 전기차나 스마트폰 등을 만드는 데 필수 재료인 희토류도 존재한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한국도 합류한 미국 중심의 프로젝트 외에 중국과 러시아가 손잡고 달 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깃발 꽂는 나라가 임자가 될 가능성이 커 달 자원을 두고 무한경쟁이 벌어질 분위기인데, 지구 위의 패권 다툼이 우주 공간에 투영된 양상이다.

1990년 2월14일 보이저 1호가 60억㎞ 거리에서 촬영한 ‘창백한 푸른 점’ 지구를 미 항공우주국이 30년 만인 2020년에 좀 더 선명하게 보정해서 공개한 사진. 미 항공우주국 제공
1990년 2월14일 보이저 1호가 60억㎞ 거리에서 촬영한 ‘창백한 푸른 점’ 지구를 미 항공우주국이 30년 만인 2020년에 좀 더 선명하게 보정해서 공개한 사진. 미 항공우주국 제공

달 너머로는 별이 촘촘하다. 우리은하에는 태양 같은 항성과 지구 같은 행성이 최대 4천억개 있는데, 이런 은하가 우주에는 1400억개가 있을 거라 한다. 최근 발사한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지구에서 385광년 거리에 있는 거대 가스 행성을 촬영해서 전송했다. 하지만 광활한 우주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야말로 티끌이다. 인간이 만든 물체 중 가장 먼 거리를 여행 중인 보이저 1·2호는 1977년 발사 후 45년간을 쉼 없이 날아가 태양계를 벗어났고, 지금도 시속 5만5천㎞로 어둠 속으로 멀어져간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1광년은커녕, 빛의 속도로 하루 못 미치는 거리를 간 것이다.

태양계 외행성 탐사 임무를 마친 보이저 1호의 카메라 장치를 끄기 직전,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항공우주국(나사)에 카메라 방향을 돌려 지구를 찍어보자고 제안한다. 예정에 없던 이 아이디어로 약 60억㎞ 거리에서 좁쌀만 한 빛으로 흔들리는 1990년의 지구가 찍혔다. 세이건은 이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 이르며 이렇게 썼다. “모든 영웅과 겁쟁이가, 모든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가…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연인들이… 저기, 태양의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 티끌 위에 살았던 것입니다. … 우리의 작은 세계를 멀리서 포착한 이 사진만큼 자만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건 없을 것입니다. 내게는 이 사진이 우리가 서로 친절하게 대하고, 유일한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지켜가라고 역설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책 <코스모스>에는 누군가 우리를 들어 우주 공간으로 던지면 행성 근처에 떨어질 확률이 1을 1조×1조×10억으로 나눈 값보다 작다고 씌어 있다. 이럴진대, 푸른 별 지구라는 한층 희박한 가능성을 잡은 한명, 한명은 얼마나 귀한가.

여기까지 생각이 흘렀다면 이제 땅으로 내려오자. 그렇게 귀하게 태어난 존재 중 일부는 차례상을 차리고 손님 뒤치다꺼리하느라 ‘명절 증후군’을 토로한다. 관습에 얽매여 누군가는 참고 견디고, 누군가는 즐기는 명절은 진작 손봐야 했다. 늦게나마 유교의 본산 성균관에서도 전 부치고 음식 많이 차리는 게 원래의 예는 아니라고 밝혔다. 다시 거실로 돌아와서는 “내년부터는 명절 차례상을 간소하게 차리자”는 말을 꺼내보면 어떨까?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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