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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외국어’라는 외부

등록 2022-09-18 18:56수정 2022-09-19 02:38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그대여, 외국어를 힘껏 배우라. 언어는 이 세계를 낱낱이 쪼개어 이름을 붙이고 그 속에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심어놓았으니. 우리의 운명은 모국어가 짜놓은 모눈종이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세계만이 유일하고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외국어는 모국어가 만들어놓은 그 질서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다. 말소리에서부터 단어, 문법, 문자 등 우리와 다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직조해놓은 말의 그물은 우리를 낯선 세계로 잡아당긴다.

외국어는 살갗과 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나와 모국어 사이에 틈을 만들어낸다. 살갗과 살 사이에 ‘산들바람 집어넣기’랄까(‘물집’이면 어떠랴)? ‘결정을 내리다’라는 말을 영어로는 ‘결정을 만든다(make)’고 하고, 불어로는 ‘결정을 잡는다(prendre)’고 한다. ‘그렇지, 결정은 내릴 수도 있지만, 만들 수도, 잡을 수도 있겠다’ 싶은 거다. ‘약속을 잡다’를 영어에서 ‘약속을 만든다(make)’고 하듯이.

도저히 모국어로 번역되지 않는 말을 만났을 때, 그것은 벽의 체험이다. 외국어로 번역되지 않는 모국어가 있을 때, 그것은 낭떠러지의 체험이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다)’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독특한 감각은 외국어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벽과 낭떠러지는 득도의 경계선. 외국어라는 외부를 내 속에 영접해야 비로소 모국어를 알게 된다. 그래서 나의 모국어가 일종의 외국어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라야 모국어는 습관과 반복이 아니라 경탄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어느 대도시의 소란처럼 영어를 상용화하는 게 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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