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누리집 갈무리
[뉴노멀-실리콘밸리] 김인순 | 더밀크코리아 대표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e jacket)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광고 문구다. 패션 브랜드 회사인데 광고 캠페인에 옷을 사지 말라고 한다. 기존 잣대로 보면 이해가 안 가는 회사다.
파타고니아는 이런 캠페인으로 제트(Z)세대가 사랑하는 브랜드가 됐다. 제트세대는 패스트패션(일명 SPA) 브랜드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비영리 환경단체 어스오아르지(Earth.Org)에 따르면 패션산업으로 발생하는 탄소량은 전체의 3%에 이른다. 또 전체 수질오염 원인의 20%나 된다. 옷이 버려지기 전에 평균 7~10회를 입는다고 하는데 이는 15년 전보다 35% 줄어든 수치다. 패스트패션이 확산한 탓이다.
이런 문제에 관심을 둔 기업이 파타고니아다. 파타고니아는 패스트패션과 달리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에 친환경 브랜드 철학으로 무장했다. 이런 브랜드 철학은 소비자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환경 문제에 관심이 높은 제트세대에게 ‘개념 있는 브랜드’로 명성을 쌓았다.
파타고니아의 철학은 이제 자본주의 틀을 완전히 깨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주식 상장’(going public) 대신 ‘목적을 갖고 간다’(going purpose). 파타고니아 창업주이자 회장인 이본 쉬나드가 홈페이지에 남긴 메시지다. 쉬나드 파타고니아 회장은 자신은 물론이고 부인, 두 자녀가 소유한 모든 지분 100%를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가치는 약 30억달러에 달한다. 기업 상장 대신 기부를 택했다. 파타고니아의 결정은 다른 기업과 완전히 다르다. 특히 국내 대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기업은 정교한 승계 계획을 실행하려고 각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파타고니아는 세상의 기업과 다른 승계 계획을 실천한다. 지분의 98%를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세운 비영리재단(홀드패스트 컬렉티브)에 기부하기로 했다. 2%는 신탁사(파타고니아 목적신탁)에 넘긴다. 파타고니아는 매년 1억달러 규모의 연 매출도 생물 다양성 보전과 세계 미개발 토지 보호 활동 등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쉬나드 가족에게 남는 지분은 0%다.
쉬나드 가족은 신탁사에 기부했다는 이유로 1750만달러(약 240억원)어치의 세금 폭탄을 맞는다. 다른 여느 기업가들과는 달리 쉬나드는 기부는 기부대로, 또 세금은 세금대로 정직하게 납부한다고 밝혔다.
파타고니아는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기업공개(IPO)를 통해 주식시장에 상장해 회사 가치를 더 높이는 것을 제안받았다. 기업공개를 해도 될 만큼 탄탄한 회사이다. 쉬나드 회장은 기업공개 뒤 지분을 매각해 기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식시장에 전혀 믿음이 없다. 상장하면 회사에 대한 통제권을 잃고,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걸 최우선으로 둬야 하며, 무책임한 회사 중 하나가 돼버린다”고 지적했다. 주주의 이익만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쉬나드 회장은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자로 이뤄진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고 전했다. 라이언 겔러트 파타고니아 최고경영자(CEO)도 “이것은 ‘깨어난’ 자본주의가 아니다. 우리의 자식들과 다른 생명체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해야 하는 비즈니스의 미래다”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회사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되지만, 파타고니아는 그 공식을 버렸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더 큰 가치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가난한 암벽 등반가는 억만장자가 됐지만, 그 돈은 다시 그가 사랑하는 지구에 돌아간다. 한 기업이 아닌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 투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