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원·달러 환율이 13년 6개월만에 1430원을 돌파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2원 오른 1431.3원에 거래를 마쳤다. 사진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케이비(KB)국민은행 스마트딜링룸 전광판에 표시된 환율 모습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세상읽기]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원화가치만 떨어진 게 아니다. 올해 들어 9월25일까지 엔화가 달러 대비 약 25% 하락했고, 유로화가 약 17%, 원화가 약 20% 하락했다. 주요 선진국 통화들과 비교한 달러가치 지수는 2021년 중반 이후 상승하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물론 치솟는 인플레에 대응해 미 연방준비제도가 급속하게 금리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킹달러’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달러가치 상승이 세계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준다는 것이다. 먼저 각국의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달러화로 결제되는 에너지와 식량 등 원자재를 수입하는 국가에서 수입 가격이 높아져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 한국이나 일본도 문제지만,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식량 가격 상승으로 굶주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대로 미국 소비자들은 수입품을 값싸게 소비할 수 있고, 인플레 압력이 낮아지는 효과를 본다.
또 각국이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둔화하고 이는 수입을 둔화시켜 전세계적으로 무역과 경제 정체의 악순환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가격 충격이 큰 유럽에서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가 3개월 연속 50을 하회해 불황을 예고하고 있고,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상황도 악화하고 있다. 즉 미국의 금리 인상과 달러가치 상승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를 다른 나라들에 수출하는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도 예전에는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출이 늘었지만, 요즘은 중간재 수입이 증가한데다 기업들이 외국으로 생산시설을 많이 이전해 수출 증가 효과가 미미하다.
특히 달러화 부채를 많이 진 국가들은 달러화가 상승하면 부채 부담이 커지고 대차대조표가 악화돼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2020년 현재 신흥국 대외 부채는 약 60%가 달러화 표시 부채고, 그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20%에 달한다. 모리스 옵스트펠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의 최근 연구는 달러가치 상승이 세계적인 금융 상황 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특히 신흥국 경제 둔화와 교역 조건 악화를 가져온다고 보고한다. 그는 또 최근 환율 안정을 위한 각국의 연쇄적인 금리 인상과 통화가치 절상 노력이 마치 ‘죄수의 딜레마’ 상황처럼 세계적 차원에서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의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렇다면 미 연준은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서 세계경제에 미치는 충격과 그 책임을 고려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971년 미국 재무장관 존 코널리가 “달러는 우리 돈이지만 당신네 나라의 문제야”라고 말한 것처럼, 미국의 통화정책은 다른 나라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달러가치 급등을 막고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은행은 지난 22일 24년 만에 처음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엔화가치 하락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낮은 일본은 여전히 금리를 올리지 않고 있어 엔화 하락 압력이 높다. 한 헤지펀드는 일본은행이 결국 금리를 올리고 국채 가격이 하락할 것에 베팅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지난 15일 원-달러 환율 1400원 돌파를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지만, 결국 며칠 뒤 1400원대가 뚫리고 말았다. 한국은행이 미 연준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는 총재의 말처럼, 원화가치 유지를 위한 금리 인상 압박이 커지고 있다. 물론 가계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금리 인상의 악영향을 생각하면 점진적 금리 인상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연말까지 계속 금리를 올리겠다는 연준의 단호한 계획 앞에서 한국은행은 환율과 국내 경기 사이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정부는 킹달러의 충격 완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과거와 달리 외환시장의 불안정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미국과 통화스와프 체결이나 취약계층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적극적 재정정책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달러의 과도한 상승을 막고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국제적 협조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하필 이런 시기 대통령은 외교무대에서 성과 없이 구설에만 오르고, 국내에서는 긴축재정에 몰두하고 있으니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