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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중국의 보여주고픈 농촌, 보이기 싫은 농촌

등록 2022-09-29 18:44수정 2022-09-30 02:36

영화 <인루천옌> 포스터. 출처: 웨이보
영화 <인루천옌> 포스터. 출처: 웨이보

[특파원 칼럼] 최현준 | 베이징 특파원

“과거 마을 환경이 지금처럼 좋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21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온라인판에 실린 한 농민의 인터뷰 내용이다. 광둥성 잉더시 롄장마을 당서기인 루페이훙은 곧게 깔린 아스팔트 길과 반듯하게 올라간 양옥을 보며, 과거 흙길에 가축들의 오물이 넘치던 때를 회상했다. “우리는 2017년부터 180채 이상의 불법 건축물을 철거했습니다.” 루 서기가 자랑하듯 말했다.

<인민일보>가 지난 7월 시작한 이 시리즈는 중국 농촌의 발전된 모습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우물을 파 생수를 생산해 마을 전체가 부자가 되기도 하고, 버섯이나 한약재를 키워 고소득을 올리는 농부도 있다. 흙으로 만든 창고가 철거된 자리에 최신식 냉장창고가 들어서고, 별 쓸모 없던 뒷산은 가지런히 개간해 계단식 차밭으로 변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 짓는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석달여 앞두고 시작된 이 시리즈 기사들은 시 주석 집권기인 지난 10년 동안 중국 농촌이 얼마나 눈부시게 발전했는지, 중국 정부가 공산당 창당 주주인 농민을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정성스레 보여준다.

또 다른 중국의 농촌이 있다. 지난 7월 개봉한 저예산 영화 <인루천옌>(흙먼지로 돌아가다)에 등장하는 농촌이다. 영화는 중국 서북부 간쑤성 한 마을을 배경으로, 오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총각과 생리현상을 조절 못 하는 장애여성이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이 살던 작은 흙집은 농촌 환경개선 명목으로 철거되지만, 부부는 저항하지 않고 새 흙집을 짓기 시작한다. 매혈하고 당나귀로 밭을 갈며 삶을 꾸려나가던 부부는 힘겹게 새 흙집을 완성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아내가 죽고 파국을 맞는다. 남편이 손수 벽돌을 찍어 지은 흙집도 철거돼 다시 흙먼지로 돌아간다. 감독은 직업배우가 아닌 실제 농민인 자신의 삼촌을 노총각으로 캐스팅하는 등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남루하고 부조리한 중국 농촌의 현실을 투박하고 담담하게 담은 영화는 7월 개봉 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 뒤늦게 입소문을 타고 흥행가도를 달렸다. 제작비 200만위안(4억원)을 들인 영화가 1억위안(200억원) 이상 수입을 올리며 역주행하자 각종 분석기사가 나왔고, 여러 매체가 감독을 인터뷰했다. “내 고향이 아직 저렇다”, “이게 진짜 중국 농촌의 현실”이라는 누리꾼들 반응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영화관에 이어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옮겨 상영되던 영화가 지난 26일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그보다 2주 앞선 지난 12일을 전후해 전국 영화관에서 영화가 일제히 철수한 데 이어, 이번엔 온라인에서조차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스트리밍 플랫폼 업체나 감독의 공식적인 설명이 없어 영화가 사라진 정확한 이유는 알기 어렵다. 다만, 당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앞서 영화가 흥행하자 일부 애국주의 논객은 ‘서양 제국주의 시선에서 중국 농촌을 찍었다’, ‘누가 검열 허가를 내줬느냐’고 반발하기도 했다.

상황만 약간 바꾼다면 어느 나라 농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중국은 감추고 보지 않으려 한다. 만약 ‘20차 당대회’를 앞둔 시점이 아니었다면, <인민일보>가 농촌 발전 시리즈를 내보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발전상은 부각해 선전하고, 부족하거나 뒤떨어진 부분은 감추려는, 바로 지금 중국의 모습이다.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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