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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지구를 가열한 그들, ‘기후 부채’가 쌓여간다

등록 2022-10-02 15:45수정 2022-10-02 18:36

지난해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회의 기간에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의 사이먼 코페 외무장관이 허벅지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 들어가 수몰 위험을 호소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 영상 갈무리
지난해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회의 기간에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의 사이먼 코페 외무장관이 허벅지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 들어가 수몰 위험을 호소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 영상 갈무리

이종규 | 논설위원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들의 모임인 ‘기후취약국포럼’(CVF)은 지난달 ‘지불 연체(#Payment Overdue)’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선진국들을 향해 “이제 빚을 갚아야 할 때”라고 채근했다. 이 캠페인은 선진국들이 채무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지구 온난화에 책임이 거의 없는 가난한 나라들이 기후변화로 큰 고통을 받고 있으므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해온 부유한 나라들이 재정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본다.

이들의 ‘빚 독촉’이 터무니없는 요구는 아니다. 주요 7개국(G7)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개발도상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돕기 위해 매년 100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합의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번 ‘지불 연체’ 캠페인은 다음달 이집트에서 열리는 제27차 당사국총회(COP27)를 앞두고 국제사회에 다시 한번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의미가 있다.

기후취약국포럼의 회원국은 55개 나라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작은 섬나라, 저지대에 있는 연안국, 아프리카의 최빈국 등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놓인 나라들이다. 회원국 인구는 총 14억명으로 세계 인구의 18%에 이르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총량의 5%에 불과하다. 섬나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생존 위기에 직면해 있고, 방글라데시와 같은 저지대 연안국들도 늘 침수 피해에 시달린다. 지난해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회의 기간에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의 외무장관이 허벅지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 들어가 수몰 위험을 호소하는 영상이 공개돼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은 극심한 가뭄 탓에 기아에 허덕인다. 히말라야 산맥 등 고산지대에 있는 마을은 빙하가 녹아 발생하는 ‘빙하 홍수’에 취약하다.

기후취약국포럼은 지난 6월 펴낸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지난 20년 동안 기후취약국들의 부를 20%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가난한 나라에 기후재난이 덮치니 제대로 대응을 못해 피해가 더 커지고, 그 충격으로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기후운동가이자 작가인 나오미 클라인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온실가스 급증의 원인을 제공한 일이 없음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가장 많이 입는 나라들은 ‘기후 채권자’의 지위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 국가들은 기후 관련 재해 대응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확보하고 청정에너지 경로를 통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금전적·과학기술적 지원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

지난해 11월2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장 인근에서 각국 정상의 가면을 쓴 환경운동가들이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lt;오징어게임&gt;을 흉내내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뒤쪽에서는 드라마 속 진행요원 복장을 한 환경운동가들이 ‘세계 지도자들은 기후 게임을 멈춰라'라고 쓰인 펼침막 옆에 서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2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장 인근에서 각국 정상의 가면을 쓴 환경운동가들이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흉내내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뒤쪽에서는 드라마 속 진행요원 복장을 한 환경운동가들이 ‘세계 지도자들은 기후 게임을 멈춰라'라고 쓰인 펼침막 옆에 서 있다. 연합뉴스

이들을 기후 채권국으로 인정한다면, 빚을 갚아야 할 채무국이 있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지만, ‘기후 빚쟁이’는 일찌감치 산업화에 나서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해온 선진국이다. 화석연료에 기대어 고도 성장의 과실을 누리는 동안 지구가 뜨거워졌고, 그로 인해 가난한 나라들에 기후재앙이 닥쳤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따져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전체 온실가스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이산화탄소는 한번 배출되면 200년 이상 대기중에 머문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는 산업화 초기부터 뿜어져 나온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차곡차곡 쌓인 결과다. 국제 통계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터’ 자료를 보면, 산업화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은 미국이 전체의 24.6%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다. 유럽연합(EU)이 21.7%, 중국이 13.9%, 러시아가 6.8%로 그 뒤를 잇는다. 반면, 아프리카(2.8%)와 남미(2.6%)는 대륙 전체를 합해도 3%가 안 된다.

현대 산업문명이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쌓아 올린 성채이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것은 곧 저발전과 빈곤을 의미한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들이 선진국이 했던 방식대로 발전을 추구할 경우 기후위기는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이 인류의 ‘탄소예산’(지구 온도 상승폭을 일정 수준 이내로 묶어두기 위해 넘어서는 안 되는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대부분 써버렸기 때문이다. ‘기후 부채’ 아이디어는 이런 딜레마 상황에 대한 ‘정의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 해마다 두세 차례 ‘글로벌 기후 파업’을 이끄는 국제 기후운동 네트워크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지난달 기후 파업에서 ‘기후 배상’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다.

관건은 선진국들의 책임감 있는 태도다. 과거에는 선진국의 식민 지배로, 지금은 가난과 기후재앙으로 고통을 겪는 ‘기후취약국’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음달 열리는 COP27 회의가 부유한 나라들이 ‘역사적 책임’을 깨닫고 ‘부채 의식’을 공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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