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 뒤 진행된 경축연에서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 이종섭 국방부 장관, 윤 대통령, 김건희 여사, 김진표 국회의장, 김명수 대법원장. 대통령실 제공
김태규 | 정치팀장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나도 처음엔 ‘바이든’으로 들었는데 며칠 뒤엔 ‘날리면’으로 들리더니 칼럼을 준비하며 다시 들어보니 ‘바이든’ 같다. 물론 ‘이 ××들’과 ‘쪽팔리면’은 확실하다. 부끄럽다. 이제 그만 들을 거다.
밖에서도 설화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을 최초 메시지가 궁금했다. ‘국제적 사달’ 뒤 대통령실이 배포한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지난 9월25일 밤 11시(한국시각) <시엔엔>(CNN)과의 대담 내용이었다. 윤 대통령은 9월21일 오후 4시쯤(뉴욕시각) 비속어를 사용했고 대담 녹화는 이보다 앞선 그날 오전에 진행됐다. 당연히 비속어 파문은 대담에서 화제가 되지 못했지만, 윤 대통령이 장황하게 밝힌 ‘정치를 시작한 동기’가 놀라웠다.
“사람들은 저한테 ‘왜 한-미 동맹을 중시하느냐’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과학기술자에게 물어보면 ‘미국의 과학기술이 최첨단이기 때문에 미국하고 손을 잡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이롭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또 군인에게 왜 한-미 동맹을 해야 되느냐 물어보면 ‘미국의 군사력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 최강’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하고 손을 잡아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미국의 이런 사회적인 법적인 시스템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가급적 근접시켜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모든 잠재적인 역량을 키우는 데 가장 도움이 되고 우리 국익에 가장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저는 미국과의 동맹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법률가지만 제가 정치를 하게 된 것은 우리 한국 정치와 정치 인프라의 근저에 그런 가치지향적인, 그리고 법치와 자유, 시장경제,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과 같은 것이 너무 추락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세워야 되겠다는 마음에서 대통령선거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정치를 시작한 동기를 말하면서 왜 한-미 동맹 얘기를 하는가. 본인이 신념처럼 강조하는 동맹 강화 이유가 ‘미국이 세계 최강이어서’라는 과학기술자와 군인들의 평가 때문이라는데, 미국이 초강대국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윤석열 한-미 동맹 강화론’의 토대가 이 정도인가. 미국의 과학기술과 국방력이 최고이므로 ‘미국의 사회적인 법적 시스템’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는 대체 뭔가. ‘정치를 왜 시작했느냐’는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결국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는 황당한 논리적 비약이 발생한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키며 동맹의 뒤통수를 후려쳤는데도 한국 대통령의 답이 이랬다.
북미 순방 뒤 윤 대통령은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9월27일)에선 “16년간 인구문제 해결을 위해 28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올해 2분기 출산율은 0.75명까지 급락했다”며 “출산율을 높이는 데만 초점을 맞췄던 기존 정책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시작으로 ‘포퓰리즘’이 아닌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 과거 정부의 저출생 대책은 모두 포퓰리즘 정책이었나. 본인이 대안으로 제시한 “데이터에 기반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란 대체 뭔가. 이튿날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280조원의 예산을 모두 포퓰리즘이라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며, “문제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무엇이냐’이다”라고 적었다. 알맹이 없이 공격적이기만 한 대통령의 언어를 지적한 것이다.
앞선 칼럼에서 성찰과는 거리가 먼 윤 대통령의 거친 말본새에 우려를 나타냈고(
‘예쁘게 말하기’),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을 왜 하는가’) ‘이 ××’ 같은 욕설, 사람이니까 할 수 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상기시켰듯이 바이든도 욕설하다 걸린 적 있다. 환갑 넘어 언어습관 고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윤 대통령에겐 이젠 기대치를 낮춰 실용적인 접근을 하고 싶다. 말보다 더 중요한 게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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