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온 유학생 아이샤(가운데 검은 옷)가 2022년 10월5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대사관 앞에서 인권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히잡 의문사’ 관련 시위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들어 올리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편집국에서] 정은주 | 콘텐츠총괄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 출신의 22살 마흐사 아미니는 지난달 13일 가족과 함께 수도 테헤란을 방문했다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체포됐습니다. 재교육 센터로 보내졌는데 교육장에 들어간 뒤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경찰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고 주장했지만 유족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 의문사 사건은 일간지 <샤르그> 소속 닐루파르 하메디 기자의 보도로 처음 알려졌습니다. 아미니의 의료기록을 본 일부 의사들이 머리를 맞아 죽었을 가능성을 말하면서 ‘히잡 반대 시위’는 이란 전역으로 번져갔습니다.
이번 시위는 두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가장 오랜 기간(4주째) 시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2009년 부정 선거, 2017년 경제 문제, 2019년 연료 가격 인상에 대한 시위가 있었지만 몇주 만에 이란 정부에 의해 유혈 진압됐습니다. 이번 시위에서도 죽음이 잇따릅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 ‘이란 휴먼 라이츠’는 8일 현재 적어도 185명이 시위로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사망자 가운데 최소 19명이 18살 미만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위가 갈수록 거세진다는 게 다른 점입니다.
둘째, 처음으로 사회적, 경제적 배경이 다른 집단이 함께 시위합니다. 2009년 반정부 시위가 처음으로 대규모로 열렸을 때는 대도시 중산층만 나섰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란 전역에서 남녀 할 것 없이 거리에 나서고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이 함께합니다. 이란을 떠났던 망명인, 유학생들도 힘을 보탭니다.
죽음의 위험에도 이란 시민들이 왜 거리로 나서는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이란 청년 세대를 연구해 책 <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2017)를 쓴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이란 가수 셰르빈 하지푸르의 노래 ‘위하여’를 소개했습니다. 무명 가수인 하지푸르가 시위를 지지하는 이란 시민들의 트위터 등을 모아 노래 가사를 썼다고 합니다. 이들은 평범한 삶을 되찾기 위하여 시위에 동참한다고 말합니다.
‘거리에서 춤을 추기 위하여/ 키스하기 두려워서/ 내 여동생을 위해 당신의 여동생을 위하여/ 쓰레기 줍는 아이와 그의 꿈을 위하여/ 부패한 경제를 위하여/ 오염된 공기를 위하여/ 웃는 얼굴을 위하여/ 미래를 위하여/ 이 강요된 천국을 위하여/ 수감된 지식인들을 위하여/ 이민 온 아프간 아이들을 위하여/ 평화를 위하여/ 긴 밤 뒤에 떠오르는 태양을 위하여/ 신경안정제와 불면증약을 위하여/ 남성·조국·번영을 위하여/ 소년이 되고 싶었던 소녀를 위하여/ 여성·생명·자유를 위하여’
지난달 28일 노래가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48시간 만에 조회수 4000만회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이란 정부는 하지푸르를 체포했고 이 노래 영상은 인스타그램에서 지워졌습니다. 하지만 지난 1일 서울, 로스앤젤레스, 토론토, 런던, 파리, 도쿄 등 글로벌 연대 시위가 열린 전세계 도시에서 노래는 울려퍼졌답니다.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소 아중동연구부장은 이번 시위가 확대되는 이유로 경제난을 첫손에 꼽았습니다.(‘이란 히잡 거부 시위 확산의 배경과 정치적 함의’ 보고서) 2015년 이란 핵 합의가 타결되면서 이란은 잠시 개방과 발전의 가능성이 엿보였습니다. 그러나 2018년 미국의 탈퇴로 다시 고강도 제재를 받게 됩니다. 석유 수출 및 금융 거래가 막히면서 물가와 실업률은 치솟았고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경제 상황이 심각해지자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인 부장은 “(미국의) 제재가 계속될 때는 저항경제를 유지하며 익숙하게 버틸 수 있었지만 한번 풀렸다가 다시 제재를 받게 되면 그 고통은 심화된다”며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작은 불씨로도 크게 발화할 수 있는 불안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란 히잡 반대 시위의 미래를 우리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각계각층의 지지를 받으며 이 시위를 이끌고 있는 젊은이들의 미래는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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