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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인간은 먹은 만큼 배설해야 한다

등록 2022-10-11 18:25수정 2022-10-12 02:37

[최재봉의 탐문] _22 똥
똥은 중요하다. 인간은 먹어야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똥과 오줌을 배설해야 살 수 있다. 인풋과 아웃풋이 두루 순조로워야 인간이라는 생명-기계는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다. 밥이 필요한 만큼 똥도 불가피하다.

이번 꼭지 주제를 보고 당황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침 신문에서 웬 지저분한 이야기냐며 눈살을 찌푸리는 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똥은 중요하다. 인간은 먹어야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똥과 오줌을 배설해야 살 수 있다. 인풋과 아웃풋이 두루 순조로워야 인간이라는 생명-기계는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다. 밥이 필요한 만큼 똥도 불가피하다. 소설가 김훈이 산문집 <연필로 쓰기>에 실린 ‘밥과 똥’이라는 글로 강조하려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김훈은 소설에서도 유난하다 싶을 정도로 똥을 자주 묘사했다. 장편 <내 젊은 날의 숲>에서 주인공인 조연주의 어머니는 딸과 통화하면서 따로 지내는 아버지의 병증을 이렇게 전한다.

“너네 아버지, 변비가 왔어. 똥이 차돌멩이처럼 굳어져서 간병인이 꼬챙이로 파냈어. 팠더니 쪼가리로 떨어지더래. 새카맣고 딱딱했는데, 거기 밥알이 박혀 있었대. 똥에 물기가 전혀 없는데도 냄새는 칼로 찌르는 것 같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단편 ‘화장’에서는 죽을병으로 입원한 오 상무의 아내가 괄약근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채 똥을 힘없이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장면이 잔인하게 묘사된다. “항문 괄약근이 열려서, 아내의 똥은 오랫동안 비실비실 흘러나왔다.”

사실 한국문학에서 똥에 관한 묘사는 제법 꾸준히 이어져 왔다. 김동인의 단편 ‘K 박사의 연구’(1929)에서 케이(K) 박사는 똥을 식량으로 재활용하기 위한 연구에 몰두한다. “대변 가운데 그냥 남아 있는 자양분은 아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이 헛되이 썩어버리는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추출할 수만 있다 하면은 그야말로 식료품 문제에 위협받는 인류의 큰 복음이” 되리라는 것이 박사의 믿음이다. 박사는 똥에서 추출한 양분으로 음식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시식회까지 열지만, 재료가 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먹은 음식을 토해 내는 바람에 연구는 중단되고 만다.

6·25전쟁 무렵을 배경 삼은 하근찬의 단편 ‘분’(糞)에서 주인공 덕이네는 부잣집 아들이 면장에게 뇌물을 써 징집에서 빠진 반면, 가난한 제 아들은 속절없이 군에 끌려가자 그에 앙심을 품고 모종의 행동에 돌입한다. 면장실 앞 현관에 똥을 한 무더기 누어 놓는 것이다.

“히히히… 문둥이 자식, 내일 출근하다가 저걸 물컹 밟아야 될 낀데….”

복수를 위해 똥을 누는 행위는 최진영의 소설 <내가 되는 꿈>에도 나온다. 주인공인 맹랑한 소녀 태희는 질 나쁜 선생님의 자동차 보닛 위에 똥을 누는 것으로 초등학교 졸업 의식을 대신한다. “내 똥이나 처먹으라고 외치고 싶었다”는 태희의 심사는 ‘분’ 마지막 장면에서 덕이네가 품는 안쓰러운 소망과 이어진다.

남정현에게 필화를 안긴 단편 ‘분지’(糞地)에는 제목과는 달리 실제로 똥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작품 제목은 강대국 미국의 폭력과 모욕에 시달리는 이 땅의 처지를 상징하는 비유적 표현이라 하겠다. 방영웅의 장편 <분례기>의 주인공 분례(糞禮)는 어머니가 뒷간 똥 위에 낳았다고 해서 ‘똥례’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잡초처럼 시달리고 짓밟히는 그의 삶 역시 이름을 닮았다.

<분례기>의 주인공이 똥처럼 비천한 사람이라면, 권정생의 단편 동화 ‘강아지똥’은 이름 그대로 강아지가 눈 똥을 주인공 삼은 작품이다. 강아지똥은 하느님을 원망하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지만, 저를 거름 삼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민들레를 만나며 생각을 바꾸게 된다.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김지하 담시 ‘똥바다’의 원제는 ‘분씨물어’(糞氏物語). 일본이 자랑하는 고전소설 <겐지 이야기>(源氏物語)에 빗댄 제목에서부터 풍자적 의도가 선명하다. 주인공인 분삼촌대(糞三寸待)는 조상 대대로 조선과 똥 때문에 횡사한 내력을, 평생 참았던 똥을 서울 한복판에 가서 왕창 누는 것으로 설욕하겠다는 분심(憤心? 糞心?)을 품는다. 이순신 장군 동상 위에 오른 그가 싸지르는 똥의 종류와 형용을 묘사하는 대목은 가히 이 작품의 눈대목이라 할 만하다.

“홍똥, 청똥, 검은똥, 흰똥/ 단똥, 쓴똥, 신똥, 떫은똥, 짠똥, 싱거운똥/ 다된똥, 덜된똥, 반된똥, 반의반된똥, 너무 된똥/ 너무 안된똥,/ 물똥, 술똥, 묽은똥, 성긴똥, 구린똥/ 고린똥,/ 설사똥, 변비똥, 피똥, 똥 같지 않은 똥, 똥 같지 않지만 똥임이 분명한 똥/ 지렁이 섞인 똥, 회충 촌충 십이지장충 섞인 똥, 똑똑 끊어지는 똥, 줄줄 이어지는 똥, 꼬불꼬불 말리는 똥, 확확 퍼져나가는 똥,(…)”

양귀자의 단편 ‘지하 생활자’에는 화장실이 없는 연립주택 지하방에 사는 인물이 나온다. 계약할 때 1층에 사는 주인 여자는 언제든 제집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했지만, 막상 1층으로 올라가면 문을 열어주지 않고, 주인공은 골목에 주차된 차 뒤에서 볼일을 보고는 한다. “똥 쌀 데가 없으면 처먹질 말아야지!”라는 이웃 주민의 일갈은 밥과 똥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한 이창동의 중편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서울 상계동 아파트촌 건설 당시를 배경으로 삼는다. 가까스로 아파트에 입주한 주인공 준식 앞에 운동권으로 수배 중인 이복동생 민우가 나타나며 소시민적 행복에 균열을 일으킨다. 위기감을 느낀 준식은 술김에 정보과 형사에게 민우의 소재를 알리고, 민우를 체포하러 온 형사들을 피해 어둠 속에 도망가던 그는 아파트 공사장의 똥구덩이에 넘어져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운다. 소설 마지막 대목이다.

“이 거대한 오욕의 세상, 이미 모든 순결함과 품위를 잃어버린 이곳에서 나 또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가자, 하고 그는 어둠 속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설득했다. 이 어마어마한 쓰레기의 퇴적층 위, 온갖 오물과 증오와 버려진 꿈들을 발 아래에 두고 저 까마득한 허공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23평짜리의 내 보금자리를 향해.”

장정일은 김훈 못지않게 똥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관심의 방향은 달라서, 그에게 똥은 인간의 위선과 허위를 까발리는 수단으로 구실한다. 경장편 <아담이 눈뜰 때>의 주인공은 “나는 개다. 똥을 주워먹는다. 나는 개다. 똥을 주워먹는다”라는 독백으로 자기 모멸을 시전한다. 필화를 일으켰던 문제작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등장하는 인물 제이는 파트너인 와이의 똥을 먹는다. “와이의 똥을 먹으며 제이는 ‘나는 어떻게 이렇게 똥을 잘 먹을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까닭은 자명하다. 제이 자신이 똥이기 때문이다.” 이 두 소설에서 똥을 먹고 스스로 똥이 되는 자멸의 포즈는 사실은 세계를 향한 야유와 고발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장정일은 오랜만에 내놓은 시집 <눈 속의 구조대>(2019)에서도 마르키 드 사드를 닮은 분변(糞便)의 상상력을 이어 간다.

독자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듯한 엽기와 도착, 그로테스크를 특징으로 삼는 김언희의 시에도 인간 존재 자체를 똥으로 파악한 작품이 있다.

“똥처럼 오연하다 홍도야 똥처럼 의미심, 심장하다 똥처럼 난해하다 홍도야 위험한 또옹, 나는 방약무인한 구린내로 나의 있음을 진동시킨다 홍도야 고장난 변기 속의 똥무더기 같은 나의 있음을 홍도야 내 입으로 핥아 치울 수밖에 없는 요망한 요망한 요오망한 있음을 홍도야 똥 묻은 입으로 물고 빨고 핥고 분다 홍도야”(‘홍도야’ 전문)

요절한 작가 김소진의 사후에 나온 소설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의 표제작에서 작가 자신의 가탁이라 할 주인공 민홍은 재개발을 위해 철거 중인 옛 동네를 찾아갔다가 갑자기 변의를 느껴 반쯤 부서진 집의 “세로로 절반쯤 깨진 큼직한 항아리” “안으로 엉덩이를 비집고 들어가 벽돌과 깨진 장독 쪼가리를 디디고” 앉아 똥을 눈다. 미완성 유작 ‘내 마음의 세렌게티’에서는 증권사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쓴 한 인물의 유서가 심금을 울린다. 미구에 닥칠 죽음을 작가 자신이 무의식 차원에서라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이 유서는 절절하다.

“…이제 나는 세상의 똥으로 돌아갑니다. (…) 똥이 다시 부드러운 흙과 투명한 바람과 서로 몸을 섞고 맑은 공기를 따라 푸성귀도 되고 짐승의 살이 되듯 일평생 똥이 가득 머물다 간 집이었던 내 몸뚱어리는 스스로가 똥이 되려 합니다. 거름이 되려 합니다. 끝내 다시 태어나려는 기억도 잊으려 합니다….”

최재봉 | 책지성팀 선임기자
1988년에 한겨레에 들어와 1992년부터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작가들과 독자들 사이의 가교 역할에 충실하며, 문학의 본질과 변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한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거울 나라의 작가들> <그 작가, 그 공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악평> <지구를 위한 비가> 등이 있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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