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 축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손원제 | 논설위원
윤석열 정권 출범 후 상식 파괴가 일상화하고 있다.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일 리 만무하다. 우리 사회가 어렵사리 세워온 가치의 기둥들을 무너뜨리는 반달리즘적 파괴로 일관하고 있다. 불과 5개월 만에 국가의 퇴행이 가시화하고 있다.
첫째,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윤석열차’ 사태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겪고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보수정권의 탄압 본색을 드러냈다. <중앙일보> 대기자 출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윤석열차’가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을 받은 것을 두고 “만화 공모전이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변색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카툰의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는 ‘주로 정치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한 컷짜리 만화’이다. 문화부 장관의 자유로운 어휘력보다 더 우리를 놀라게 한 건 “그런 문제에 대통령이 언급할 건 아니다”라고 퉁친 윤 대통령의 민낯이다. 블랙리스트 수사를 지휘했고 취임식에서 33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21번 자유를 외친 그 사람이 맞나. “당신이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싸워주겠다.” 볼테르의 명언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후세 작가가 가필한 언명이다. 이 정도 결기쯤 기대했다가 무안해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권력기관의 사병화다. 검찰은 물론 경찰, 감사원까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허물어지고 있다. 한동훈, 이상민, 유병호를 앞세워 전임 정권과 야당을 향해 칼을 휘두르기 바쁘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대통령실에 문자를 보내 직보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국감에서마저 유착 의혹에 대해 “답변하지 않겠다”고 버티거나 “추가 연락한 적 없다” “몇번 되지 않는다”며 말을 바꿨다. 반면, 김건희 여사 의혹에 대해선 경찰은 잇따라 무혐의 면죄부를 내줬고, 검찰 수사는 지지부진, 지리멸렬이다. 주가조작 사건 공범들 재판에서 김 여사 연루 정황이 잇따라 제시되고 있는데도, 도무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탄압과 권력기관의 어용화는 모두 정권의 정당성 기반이 흔들릴 때 들고나오는 통치 수단이다. 국정 비전과 성과로 국민 다수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정권이 꺼내 드는 카드다. 이념적 갈라치기와 상대 진영 공격으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략으로, 정권 초반에 함부로 쓸 초식이 아니다. 20~30%대 국정지지율에 갇힌 현 정권의 처지가 역설적으로 말기적 처방을 강제하는 셈이다. 그러나 자기편만 바라보는 정치공학으로 버티기엔 남은 4년7개월이 너무 길다. 성과와 소통으로 지지 기반을 넓히는 정공법이 답이다. 물론 ‘소 귀에 경 읽기’일 것이다.
셋째, 정치 실종의 가속화다. 앞의 두 퇴행이 촉발한 결과적 퇴행이다. 윤 대통령은 야당 대표의 거듭된 ‘민생 영수회담’ 제안을 일축했다. “이 ××들” 욕설 사용에 대한 사과는 거부했다. 오히려 똑같은 내용의 보도를 한 148개 언론사 중 <문화방송>(MBC)만 콕 집어 집중 공격에 나섰다. 야권에 대한 사정 강도도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국회의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는 묵살하고, 김문수 같은 ‘극우 막말러’ 기용을 이어가고 있다. ‘협치 따윈 난 몰라’다.
진짜 문제는 윤 대통령의 이런 파괴적 행보가 결국 국정 난맥과 민생 불안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은 11일 “세계 경제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다”며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이 내년에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핵무기 사용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북한의 전술핵 위협도 가중되고 있다. 경제·안보 복합 위기가 강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처는 도통 미덥지 못하다. 국가 역량을 총결집해 대응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국정 최고 지도자가 국민을 편가르기하고 진영 대결을 격화시키는 길로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위기는 나라 간에도, 나라 안에서도 불균질하게 덮쳐올 것이다. 유능하고 헌신적인 인솔자가 함께한다면, 폭풍우를 피하진 못해도 함께 이겨낼 수는 있을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행운도 기대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인솔자가 무능하고 게으른데 편파적이기까지 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 공동체의 현존하는 최대 위험 요인은 위기 자체가 아니라 이 점에 있을지 모른다. 인솔자의 방향 상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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