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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윤 대통령의 명운을 결정지을 5개월 / 강희철

등록 2022-10-20 16:59수정 2022-10-21 08:53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희철 ㅣ논설위원

“저 양반은요,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기업을 경영해본 적이 없어요. 아마 대통령 노릇도 소비자(국민) 신경 안 쓰고 할 거예요.”

현대건설 시이오(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MB)의 취임이 임박한 2008년 초, 이계안 당시 통합민주당 의원이 예언하듯 말했다. ‘왕 회장’(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밑에서 동문수학한 엠비지만, 자신이 겪어본 카드사 시이오처럼 매일 매시간 소비자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워본 경험이 없어 걱정된다고 했다. 우려는 머잖아 ‘광우병 사태’로 나타났다. 재선 국회의원에 서울시장까지 지냈어도 몸에 밴 ‘경로 의존성’은 떨쳐내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다양하고 심각한 ‘직업병적(?) 증후’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껏 서울 서초동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출퇴근하는 모습은 검찰을 떠난 듯 떠나지 못한 그의 정신세계와 묘하게 겹쳐 보인다.

오늘의 윤 대통령을 있게 한 검사라는 직업은 범죄 수사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다. 정치에는 시야각이 넓은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하다. 검사는 기소·불기소, 유죄·무죄 말고 중간 선택지가 없다. 정치인은 7 대 3이나 6 대 4, 5 대 5의 가능성을 부단히 모색할 수밖에 없다. 검사의 저돌성은 미덕이 될 수 있다. 반면, 대통령실 이전 같은 저돌적 정치는 단절과 고립을 자초하기 쉽다. 검사에게 피조사자는 꿇려야 할 대상이다. 정치에선 때때로 상대방과 거래가 불가피하다. 정치인의 협치가 윤 대통령 눈엔 협잡으로 비칠 수 있다.

검찰 수사팀 짜듯 잘 아는 사람, 근무연 있는 사람에게 집착한 인사는 호된 역풍을 맞았다. 한번 찍은 표적은 두번, 세번 영장을 청구해서라도 기어이 ‘입고’(구속)시키고야 마는 전투적 기질은 이준석 전 대표 축출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심지어 “잘한다”고, “계속 이렇게 해야” 한다고 문자로 독려하다 노출돼 남우세를 샀다.

잘못을 해도 사과하지 않는 까닭은 검사의 사전에 그런 말이 없기 때문이다. 검사는 기소를 잘못해 무죄가 나도 당사자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다. ‘판사를 잘못 만나 그리됐을 뿐’이다. 형사보상 책임은 국가가 진다. ‘건들거린다’는 평도 들린다. 말투나 몸가짐에서 절제나 겸손함 같은, 지도자의 풍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가 검사로 임관한 것은 1994년,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02년 서울중앙지검에서 피의자 구타 사망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당시 검찰의 조직 문화, 검사들의 행동거지와 관련해 적잖은 시사를 담고 있다. 같은 토양에서 윤 대통령도 생활하며 성장했다.

기삿거리를 손에 쥔 ‘슈퍼 갑’ 검사로 만만한 법조 기자들을 ‘을’처럼 대하던 습관이 출근길 경솔한 발언들로 이어졌다. 30%대 지지율이 무너지고 나서야 문제를 좀 알아차린 듯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 얘기하는” 버릇은 변함이 없고, 호통의 강도와 빈도는 검찰총장 때보다 높아졌다고 한다. 대선 때 그를 지지·성원한 검찰 원로나 선배들조차 요즘 대통령 얘기를 꺼내면 긴 한숨부터 몰아쉰다.

다수 언론이 대통령의 변신을 주문하고 있다. ‘검사 물’을 빼라는 권유가 많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직업적 체험은, 최신 연구에 따르면, 뇌에 깊이 새겨진다. “뇌는 과거 경험을 사용해 (스스로 인식하지 않아도) 당신의 행동을 예측하고 준비한다.”(리사 펠드먼 배럿,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경로 의존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인 셈이다. 헤어나는 길은 “공감능력을 키우고”, “의식적인 반복 연습”을 통해 ‘뇌의 배선을 바꾸는 문화적응(acculturation)’밖에 없다는데, 녹록지 않다. 20세기 이후 미국에서 정치 경험 없이 대통령으로 ‘직행’한 두 사람, 군인 아이젠하워와 장사꾼 트럼프의 성패가 이 지점에서 갈렸다.

윤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2024년 4·10 총선을 1년 남짓 앞둔 내년 초까지도 지금의 난맥과 혼돈이 지속된다면, 먼저 탈당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준석을 능가하는 ‘내부 총질러’들이 앞다퉈 출현하고, 어쩌면 국민의힘이 쪼개질 수도 있다. 민주화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과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뺀 역대 통치자들이 예외 없이 같은 일을 겪었다. 의원 배지를 대하는 ‘여의도’의 생리는 누아르가 무색할 만큼 비정하다. 수사판을 키운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11월10일이면 윤 대통령 취임 반년이다. 분수령이 될 내년 4월 재보선까지는 겨우 5개월 정도가 남는다.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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