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씨제이이엔엠(CJ ENM)이 주최한 ‘케이콘 2022 재팬’ 콘서트가 14~16일 사흘 동안 도쿄 고토구에 있는 실내경기장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렸다. 씨제이이엔엠 사진제공
[특파원 칼럼] 김소연 | 도쿄 특파원
지난 15일 토요일 저녁 7시 도쿄 고토구에 있는 실내경기장 ‘아리아케 아레나’엔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한국 씨제이이엔엠(CJ ENM)이 주최한 ‘케이콘 2022 재팬’ 콘서트를 보러 온 일본 팬들이다. 모두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아이브, 뉴진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앞으로 한국 케이팝을 이끌어갈 신진 아이돌이 총출동한 무대였다.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마스크를 쓴 채 관람을 해야 했지만, 3년 만에 오프라인 콘서트를 보며 팬들은 환호했다. 14~16일 사흘 동안 진행된 콘서트와 부대 행사엔 6만5000명이 몰렸다. 220개국 약 870만명이 생중계로 콘서트를 봤다. 열광하는 일본 팬들을 직접 눈으로 보니, 케이팝의 인기를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드라마·영화·아이돌·패션·음식·소설 등 일본에 널리 퍼져 있는 이른바 ‘케이(K) 문화’의 영향력은 일상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일본인 친구들의 공통점은 모두 한국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30대 초반인 한 친구는 한국 아이돌과 드라마에 푹 빠져 지내다가 ‘한국 메이크업’에 눈을 떴다. 아이돌의 화장법을 따라 하는 취미가 지금은 직업이 됐다. 몇년 전부터 한국에서 자격증을 따고 메이크업 일을 하고 있다. 인간관계나 문화적 차이로 처음엔 많이 힘들어했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대 후반인 친구는 평소엔 유튜브로 한국과 관련한 영상을 찾아보고, 주말이면 도쿄에 있는 한식 맛집을 찾아다닌다. 떡볶이·잡채·김치찌개 등 한국요리 솜씨도 수준급이다. 이 친구는 ‘한국풍 카페’ ‘한국풍 패션’ 등 한국풍(일본어로 간코쿠후)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검색하면 흔하게 나오는 말이라고 했다. 유행 상품을 이야기할 때 흔히 프랑스풍·북유럽풍·일본풍은 자주 들어봤는데, 한국풍이라니 기분이 묘했다. 이 친구에게 ‘뭐가 그렇게 좋냐’고 물어보면 ‘한국풍은 저렴한데 귀엽고 특별해서 좋다’고 말한다. 많지 않은 월급에 직장생활이 버거운 이 친구에게 한국 문화는 큰 즐거움이다.
돌이켜 보면, 지금의 일본 친구들처럼 나 또한 일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일본 문화에 푹 빠지는 계기가 됐다. 스무번 이상 봤고, 주인공 쓰마부키 사토시가 나온 영화·드라마를 거의 빼놓지 않고 챙겼다. 20대였던 쓰마부키는 어느덧 40대가 됐다. 일본에 대한 관심은 규슈부터 홋카이도까지 배낭여행으로 이어졌고, 결국 도쿄에서 일도 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꽉 막혀 있던 일본 무비자 관광 입국이 지난 11일부터 허용됐다. 2년7개월 만에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새달 1일부터 한국도 2년8개월 만에 일본 등에 대해 무비자 입국이 재개된다. 다시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해지면서 양쪽 모두 들썩이고 있다. 1998년 일본의 대중문화 개방과 함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일은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누군가는 인생이 달라지고, 누군가는 일상을 버티는 힘이 되기도 한다. ‘반일’ ‘혐한’ 등 여러 부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삶을 조금 더 풍성하게 해주는 문화의 흐름은 막기 힘들다. 문이 열렸고, 맘껏 누리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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