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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질척거리다

등록 2022-10-23 17:47수정 2022-10-24 02:38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보통은 장애인을 향해 ‘당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냐?’고 묻는다. 장애학자 마이클 올리버는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라고 제안한다. 장애는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 걸 알게 하는 질문이다.

10월19일 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 자리. 며칠 전 정무위에서 국회의원 윤창현씨가 쓴 ‘질척거린다’는 표현에 국민권익위원장 전현희씨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이 말에 의문을 품게 된 국회의원 배현진씨는 국감장에서 국립국어원장 장소원씨를 불러 세웠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진흙이나 반죽 따위가 물기가 매우 많아 차지고 진 느낌이 자꾸 들다’라고 풀이되어 있는데, ‘이 이상의 사전적 의미가 있냐?’고 묻더라. 사전에 그런 뜻이 없으니 국가사전을 옹위해야 하는 국어원장 입장에선 당연히 ‘없다’고 하더군.

사전이 뭐라 하든, 말은 쉼 없이 움직인다. 누구의 승인도 필요 없다. 이미 인터넷엔 ‘질척거리는 남자나 여자’를 싫어한다는 글이 수북하다. 비슷한 뜻의 ‘질퍽거린다’는 말도 진흙이나 반죽 말고 사람에게도 쓰인다. 엄마를 좋아하는 우리 딸은 외출하면서 한 번이면 될 인사를 아쉬운 듯 몇 번씩 되풀이한다. ‘그만 질척거리고 어서 가’라는 핀잔을 듣고서야 새초롬해져서 간다. 나도 가끔 아내에게 귀찮게 굴어 이 소리를 듣는다.

달리 물었어야 했다. “왜 진흙이나 반죽의 상태를 뜻하는 말을 ‘사람’에게 썼을까?” 혹은 “이 말을 사람에게 쓰면 어떤 뜻을 갖게 되나?”. 그랬다면 국어원장도 단답형이 아닌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 말이 획득한 의미에 대해 자신의 식견을 펼쳤을 텐데.

나는 ‘질척거린다’는 말을 들으면 수치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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