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를 통해 단체교섭을 하고 있지만 학교 쪽은 강경하기만 해요. 용역업체에 고용됐던 때 받았던 임금과 처우를 유지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 안정적인 고용은 보장받았지만 노동 강도는 더 높아졌고 처우 개선은 너무나 먼 일 같아요.
지난 6일 낮 1시 서울의 한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교내에서 시급인상 및 처우개선 집회를 하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박정옥 |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신라대지회 조합원
신라대 청소노동자로 일을 시작한 건 2011년이에요. 그 전엔 동네 슈퍼를 했지요. 장사를 하다가 갑자기 많이 아팠어요. 한달 동안 병원에서 치료받고 나가 보니 가게가 엉망이 돼 있더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가 폐암으로 입원하시게 돼 장사를 접고 간병을 해야 했지요. 그렇다고 일을 멈출 수도 없었어요. 입원비와 치료비를 벌어야 했거든요. 남편도 몸이 아파 벌이가 충분치 않으니 나도 일을 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구한 직장이 부산 사상구에 있는 신라대예요.
청소 일을 한다고 하니 가족들이 뜯어말리더군요. 힘들고 더럽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일을 왜 하냐며 당장 그만두라고요. 하지만 별다른 경력이 없는 40대 중반 여성인 나를 받아주는 곳은, 이렇게 몸 쓰는 일을 하는 곳 말고는 없었어요. 청소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대학교에서 일하는 만큼 강의실과 복도만 쓸고 닦으면 되지 않을까, 교수님들도 청소노동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막상 시작해보니 일이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강의실과 복도 청소는 업무의 반도 되지 않더군요. 층마다 있는 화장실 변기 하나하나 일일이 청소해야 했고, 커다란 100리터 쓰레기봉투를 수거장까지 운반해야 했어요. 게다가 건물 외곽 청소도 우리 몫이었지요. 봄에 벚꽃잎이 떨어지고, 가을에 낙엽이 쌓이면 지옥이 따로 없었어요. 아들이 군대에 있을 때 “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군인에겐 지옥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우리 처지가 딱 그랬어요. 온몸이 아팠고 비가 오면 허리가 쑤셔서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네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매년 10월이면 학교 축제가 열리는데 축제 세팅과 뒷정리는 우리 몫이었지요. 거기에 잔디밭 풀매기, 교수 사무실 이삿짐 운반, 외국인 교수 개인숙소 청소도 해야 했어요. 물론 이런 업무 외 노동과 연장근무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었지요.
이런 부당한 대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했어요. 우리는 간접고용으로 채용돼 매년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서를 써야 했거든요. 학교와 용역업체의 부당한 업무지시는 계속됐고,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언제 잘릴지 몰라 하루하루가 불안했어요. 매해 초 계약을 갱신할 때면 이제 그만두라고 할까 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많았네요.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간부들이 휴게실에 자주 찾아왔지만 처음부터 사정을 털어놓기는 힘들었어요. 괜히 이야기했다가 우리만 불이익당할지도 모른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노조에 가입해 활동하는 친구가 노조는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일을 한다며 노조 가입을 권유했어요. 고민 끝에 동료들과 함께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에 가입했고, 2012년 6월12일 용역업체에 노조 가입 사실을 통보했어요.
노조에 가입한 뒤로 일이 많았어요.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9월에 파업농성 투쟁을 했고, 2014년, 2021년까지 총 3번이나 했어요. 2012년 농성 기간은 9일로 짧았지만 2014년엔 79일, 2021년엔 114일을 학교에서 먹고 자며 투쟁했네요.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처지를 바꾸고 싶었던 게 다예요. 결국 10여년 긴 투쟁 끝에 직접고용을 쟁취했답니다. 직접고용이 되면 처우가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요. 학교 교직원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 임금을 받진 못하더라도 최저임금은 벗어날 거라 기대했었어요. 하지만 학교는 청소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미화원 임용규정’을 만들어 업무별로 차별 대우를 계속하고 있어요. 노조를 통해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학교 쪽은 강경하기만 해요. 용역업체에 고용됐던 때 받았던 임금과 처우를 유지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심지어 학교는 업무 중 산업재해를 당한 조합원이 두달이나 일을 못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체인력을 투입해주지 않았어요. 그러니 남은 사람들의 업무량이 늘 수밖에 없고요. 안정적인 고용은 보장받았지만 노동 강도는 더 높아졌고 처우 개선은 너무나 먼 일 같아요.
10년 넘게 노조 활동을 하면서 그래도 청소노동자로 살아가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청소노동자 없이 학교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파업을 통해 증명했기에 일에 자부심도 생겼고요. 청소노동자는 학교를 넘어 사회에 꼭 필요한 필수 노동자라는 자부심도 함께요. 그래서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한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오늘도 저는 붉은 노조 조끼를 입고 노동자 집회에 참석합니다.
※도움 배성민 <현장의 힘: 신라대 청소노동자와 함께한 114일> 저자
※노회찬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