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28일 오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종규 | 논설위원
이주호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처음 만난 건 2006년 무렵이었다. 그가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국회의원(비례)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까웠다. 국회에 들어온 이유도 ‘교육개혁’을 법률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실제 그는 임기 4년 동안 40건의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는데, 거의 대부분이 교육 관련 법안들이었다.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개혁’이 이뤄지면 모두가 행복한 교육이 구현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 듯했다. 그의 교육개혁 구상을 집대성한 책이 의원 시절 펴낸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다. ‘평준화에 점령당한 학교’(제1부 제1장)라는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고교평준화를 만악의 근원으로 여겼다. 평준화의 폐해를 극복하려면 다양화가 필요하니, 다양한 ‘자율형’ 학교를 만들어 “학교를 자유롭게” 하고, 대입 자율화 등을 통해 “학생을 즐겁게” 하자고 제안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마음 조급한 시장주의 교육개혁론자의 허황된 주장쯤으로 치부했다. 대학이 마음대로 학생을 뽑을 수 있게 하면 입시가 즐거워진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대학들의 ‘입시 횡포’는 뭐로 막을 건가. ‘다양한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과열 경쟁과 사교육은 또 어쩔 셈인가. 한국의 ‘교육 민심’에 비춰볼 때 받아들여지기 힘들 거라고 봤다.
그러나 1년 뒤 그의 머릿속 구상은 고스란히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공약으로 재탄생했다. 자율형사립고 100개 설립을 포함한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 대입 3단계 자율화, 일제고사 실시와 학교별 성적 공개 등이 그것이다. 그는 자율과 경쟁을 전면에 내세운 ‘엠비(MB) 교육정책’의 설계자에 머물지 않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장관을 차례로 역임하며, 그가 꿈꿔오던 ‘교육개혁’을 실행에 옮겼다.
자기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지나쳐서였을까. 그는 거침이 없었다. 교육 현장과의 소통이나 부작용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성과로 말하겠다’, ‘두고 보면 안다’는 식의 오만과 독선이 느껴졌다. 시민사회의 반대 목소리엔 귀를 닫았고,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교사들에겐 파면과 해임으로 강경 대응했다. 그의 ‘철두철미한 개혁’에 진보 진영에서는 ‘왜 우리 쪽에는 이주호 같은 인물이 없냐’는 농담 섞인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자율’을 주면 모든 교육 주체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해 최선의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는 듯했다. 전형적인 시장만능주의 접근법이다. 대입 자율화를 보는 태도가 딱 그렇다. 그는 인수위 간사 시절이던 2008년 1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자율을 주면 대학들이 공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사회적 책무를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해 실시된 2009학년도 입시에서 고려대가 특목고 출신을 많이 뽑기 위해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지역 주요 대학들은 풀이과정과 정답을 요구하는 ‘본고사형 논술’을 잇따라 출제했다. 대입 자율화 조처로 교육부에서 대입 업무를 넘겨받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한술 더 떠 이듬해 3월 ‘입시 불문율’로 여겨지던 ‘3불’(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을 폐기하자는 주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대입 자율화’라는 멍석을 깔아주자 ‘방종’으로 화답한 것이다.
이 후보자가 5년 내내 밀어붙인 ‘개혁’은 한국 교육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이주호 트라우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 27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그에 대한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내건 펼침막에는 ‘헉! 경쟁만능교육 이주호가 돌아왔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2010년에 6명, 2014년엔 13명이나 당선된 것은 그의 ‘경쟁만능교육’에 대한 심판이라고 봐야 한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고교 다양화와 일제고사의 부작용을 일부 인정했다. 진심이었길 바란다. 그럼에도 ‘엠비 교육 시즌2’에 대한 우려를 좀처럼 떨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엠비 교육’은 그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일방통행·속전속결식 추진 방식 탓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
이 후보자의 다음번 ‘속도전’은 인공지능(AI) 교육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가 지난해 펴낸 ‘AI 교육혁명’에는 인공지능에 대한 ‘찬사’로 가득하다. 인공지능이 한국 교육의 ‘만능 치트키’라도 된 듯하다. 교육에 인공지능을 접목하면 고질적인 입시 문제도, 교육 격차도 해결할 수 있다고 낙관하는 것 같다.
나는 그의 이런 ‘확신’과 ‘낙관’이 두렵다. 물론 새로운 기술을 교육에 활용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교육을 구원할 것이라는 식의 맹신은 위험하다. 10여년 전, 다양화·자율화에 대한 맹신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내가 옳다’는 생각만으로 ‘교육혁명’을 밀어붙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는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의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교육개혁은 최대한의 국민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좋은 방안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몇명의 전문가 혹은 몇명의 정치인이 아니라 다수의 국민이 한 방향으로 변화를 원하게 될 때 우리 교육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책에 쓴 내용 대부분을 정책으로 실행했지만, 정작 머리말에서 강조한 ‘국민적 합의’는 외면했다. 이번에는 그것만큼은 꼭 지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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