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똥통 학교’란 말을 아시리라. 어느 학교가 똥통 학교라며 여기서 쑤군, 저기서 쏙닥거린다. 취사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고교 다양화 정책으로 특목고, 자사고, 특성화고, 일반고로 나뉜 학교는 더욱 서열화했다. 묘책이 있다. ‘똥통’이란 말이 학생들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고 서열화를 강화하기 때문에 앞으로 ‘똥통’이란 말을 쓰지 못하게 하는 건 어떤가?
‘벼락부자’란 말을 자꾸 쓰면 벼락에 대한 ‘겁대가리’를 상실하여 ‘진짜 벼락’을 맞겠다며 먹구름을 쫓아다니는 부자들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도처에서 행해지는 ‘폭탄 세일’과 ‘총알 배송’은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약화해 최근의 한반도 긴장 고조의 심리적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얼마 전, 식품 이름에 마약 등의 표현을 넣지 못하게 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매일 먹는 음식에 ‘마약’을 쓰면, 사람들(특히, 사리분별 못 하는 청소년들)이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잃고 쉽게 진짜 마약에 손을 댈지 모른다는 주장이 먹혔다. ‘중독될 만큼 맛있다’는 비유적 뜻인 줄 뻔히 알면서도, 마약을 기호식품이나 식품첨가제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외국에서는 인터넷에 마약이란 단어를 노출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니, 우리 사회는 그간 너무 헐렁했어! ‘마약 김밥’이여, 이젠 안녕.
말은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세상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한다. 하지만 이렇게 직선적이고 단순하지는 않다. ‘마약 김밥’을 못 쓰게 한다고 마약 사범이 줄어들진 않는다. 세상이 져야 할 책임을 말에 떠넘기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