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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영희 칼럼] 이상민 장관, 이런 질문이 ‘선동’ 입니까

등록 2022-10-31 16:13수정 2022-11-13 19:07

한 경찰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올린 게시판 글처럼 그들 또한 눈앞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참담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집요하고 절박하게 물어야 한다.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이태원역 1번 출구 옆에 놓인 추모 쪽지.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이태원역 1번 출구 옆에 놓인 추모 쪽지.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김영희 | 논설위원실장

“이게 저 골목 금요일 밤 10시 반 사진이에요. 너무 사람이 많아 찍어뒀어요. 거기로 이어지는 세계음식거리에선 외국인 친구들과 ‘릴랙스’ ‘캄 다운’을 외치고, 앞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을 받쳐주기도 했어요. 이런 상황이 전날 공동운영 시시티브이에 다 찍혔을 텐데…. 모니터링은 했을 거 아니에요.”

지난 30일 오후 이태원 참사 골목 주변에서 만난 탠이라는 한국 남성은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내 딸 또래인 10대·20대들이 신기한 듯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다녔어요. 골목에 노란 완장 찬 몇명만 있었어도 분명히 달랐을 겁니다.”

폴리스라인이 쳐져 골목은 텅 비었지만 그날의 기억을 지울 순 없다. 너비 3m가 겨우 넘는 이곳에서 청춘들이 압사했다. 해밀톤호텔 오른편으로 돌아가니 인근 상인이 주변 사람들과 말하는 게 들려왔다. “외국 기자들이 이런 인파면 통로를 일방통행으로 해야 한다 충고하더라고. 홍콩 같은 곳은 다 그런다고.”

우리는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7년엔 20만명까지 몰렸고 3년 만의 노마스크 행사였는데 인파를 분산시킬 방안은 왜 강구하지 않았는지, 압사 사고라 접근도 힘든 상황인데 통제방송이 가능한 헬기라도 띄우는 방법은 없었는지…. 한 경찰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올린 게시판 글처럼 그들 또한 눈앞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참담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집요하고 절박하게 물어야 한다.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그런데 경찰과 소방 인력, 지방자치단체를 총괄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소방력 배치 부족이 참사 원인은 아니다”라며 예상 인원보다 사람이 많았던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요와 시위로 인력이 분산됐다고도 했다. 앞뒤가 모순되는 말일뿐더러 설사 그렇더라도, 보수나 진보 집회에 13만명 넘는 인파가 한밤까지 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날 이태원 일대엔 137명 경찰인력이 배치됐다. 그것도 안전 대비 인력이 아니라 마약·성범죄 같은 사건 대비 인력이었다. 대통령부터 당정, 경찰청장까지 잇달아 ‘마약과의 전쟁’ 강조가 이어진 직후였다. 그렇다면 안전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며 ‘부족한 게 있었는지 살피겠다’ 정도라도 말하는 게 상식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놓으면 행정의 시야가 달라진다. 일본의 경우 핼러윈데이 같은 민간행사 날도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경찰의 유도차와 ‘디제이 폴리스’를 배치한다. 2013년 일본이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날, 도쿄 시부야에서 유머 섞인 말투로 골목 질서를 유지한 남성 경찰이 인터넷에서 ‘디제이 폴리스’라 불린 뒤 제도로 정착했다. “여러분은 열두번째 일본 국가대표니 팀워크를 보여주세요” “무서운 표정의 경찰도 속으론 기뻐하고 있어요. 그러니 말 좀 들어주세요” 같은, 강압적이지 않은 단속이 젊은이들 사이에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은 올해도 시부야에 350명 경찰을 배치했고, 자치구는 조례에 의거해 노상 음주를 금지시키고 상점들에 핼러윈 당일 주류 판매 자제를 권고하며 공무원과 민간경비원 100명을 동원해 질서유지에 나섰다. 범법자를 잡는 게 아니라 모두가 행사를 안전하게 즐기도록 하는 게 목적일 때 가능한 발상이다. 일본 또한 큰 압사 사고 등을 겪으며 바꿔나간 것이다.

일부 시민들이 현장에서 몰상식한 모습을 보였지만,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심폐소생술에 나서고 인근 상인들이 구조인력을 도와 길을 헤쳐갔다. 세월호 때도 그랬듯이 이런 시민의식이 참담함에 빠진 사회를 위로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을 잃은 이들과 집단 트라우마에 빠진 국민들을 위로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은 국가에 있다. 주최가 없는 행사라 보상이나 책임추궁 가능 여부를 두고 이런저런 견해가 나오지만, 어떤 재난이나 참사라도 상정하고 대비했어야 할 위치의 장관이 ‘어쩔 수 없었다’는 태도를 보이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태원은 오랜 세월 이방인의 땅이었다. 한때 주한미군을 위한 기지촌이 있던 그곳이 1990년대 이후엔 각국 음식점들이 들어서며 새로운 문화공간이 됐다. 식민지를 거치고 전쟁을 겪은 한국이 글로벌 선진국이 된 지금을 상징하듯, 이태원은 문화의 용광로가 됐다. 그곳에서 벌어진 비극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국이 돈이 없거나 기술이 없는 나라인가, 안전을 최우선으로 놓는 인식과 실천의 의지가 없을 뿐이라고. 하지만 행안부 장관의 인식이 이 정도라면 ‘민간 행사라 어쩔 수 없다’ 같은 식의 주술에서 우리 사회는 또다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31일 자신의 발언이 “섣부른 예측이나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왜 대비할 수 없었느냐는 상식적인 물음에 ‘선동’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이 장관의 인식이 내겐 더 위험해 보인다.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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