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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국민에 책임을 진다’…이태원 참사, 헌법 잊은 관료주의

등록 2022-11-01 16:03수정 2022-11-02 02:35

관료제(bureaucracy)는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책상이나 사무실 등을 뜻하는 프랑스어 ‘뷔로’와 통치를 뜻하는 접미사 ‘크라시’의 합성어다. 군주제 등 전통적인 통치체제에 대비되는 새로운 제도로서, 관료집단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고안됐다고 한다. 관료조직은 현대로 넘어오면서 급팽창했는데, 정해진 법규와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특성상 효율성과 예측 가능성 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경직성, 폐쇄성, 법규 만능주의 등 각종 병리현상 또한 잉태한다.

관료제는 여러 병폐를 낳지만 크게 두가지가 주목된다. 첫째는 관료가 국민을 섬기는 공복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집단이 되는 것이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가에타노 모스카(1858~1941)는 관료제가 엘리트 지배를 위한 유용한 장치인 동시에 그 자체가 견고한 지배계급이라고 봤다(김순양 <정부관료제의 개혁과제>). 수적으로는 소수이지만 배타적이고 응집성이 높은 엘리트 지배계급이라는 것이다. 관료들은 자신들의 이런 권력을 보존하려는 경향을 띠게 된다. 그 과정에서 국민과의 괴리는 커지고, 최소한의 공감능력마저 상실할 수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며 책임 회피성 발언을 내놓아 논란을 빚고 있는데, 한 사례로 보인다.

두번째는 관료들이 법규를 제정한 목적과 동기를 망각하고, 소극적으로 법규에 정해진 조항을 지키는 데만 몰두한다는 점이다. 행정안전부와 경찰, 지자체는 하나같이 ‘주최자가 없는 행사는 안전관리 매뉴얼이 없다’며 발뺌을 하고 있는 게 그런 사례다. 그러나 정작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제4조)은 ‘국가와 지자체는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할 책무를 지고’, ‘각종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에 따라 국민들의 안전을 지켜야 할 책무가 부여돼 있는데도 하위 세부규칙에 명시돼 있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제7조)고 밝히고 있다. 관료들이 국민의 지배자가 아니라 봉사자로서 제 역할을 하도록 이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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