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헬로, 블록체인] 김기만 | <코인데스크 코리아> 부편집장
비트코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끝이 없다. 가격이 실시간으로 변하기 때문에 화폐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부터 내재 가치가 없는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하다는 비아냥까지 도처에 널려 있다.
비트코인 채굴에 대한 비판도 그중 하나다. 거대 채굴장에서 막대한 전기를 소비하고,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지적이다. 비트코인의 연간 전력 소비량이 아르헨티나를 뛰어넘는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연구결과가 매번 인용된다.
채굴에 대한 비판은 ‘전기의 낭비’에 맞춰져 있다. 쓸모없는 비트코인을 얻기 위해 아까운 전기를 소모하고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에는 함정이 하나 있다.
전력 산업은 특수한 산업이다. 전기는 생산과 동시에 소비가 이뤄져야 하는 특수한 재화다. 저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전을 막기 위해선 발전소는 최대 수요보다 넉넉한 설비를 확보해야만 한다. 필연적으로 잉여 전기가 생긴다.
비트코인은 버려지는 전기를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다. 이른바 ‘전기의 금융화’다.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의 저자 오태민은 “비트코인이 전기를 금융화하기에 최적화돼 있다”고 강조한다. 비트코인 채굴은 유연한 전기 소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력 수요가 많은 시간대에는 채굴기를 끄고, 전력 수요가 적을 때 채굴을 하는 식이다.
미국 텍사스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텍사스는 미국에서 전기 요금이 가장 저렴해 비트코인 채굴 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업체들은 발전소와 거래를 맺고 전력 수요가 낮은 시간에 버려지는 전력을 활용해 채굴한다. 지난 7월에는 텍사스주가 폭염으로 전력난을 겪자 채굴 업체들은 자발적으로 채굴을 중단하기도 했다. 텍사스전기신뢰성위원회(ERCOT)는 채굴 업체들에 그에 따른 보상을 지불하고 협력을 이끌어냈다.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늘어날수록 전기의 잉여 문제는 더 커진다. 날씨는 정확한 예측이 어려워 발전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 전력을 공급하는 계통망에는 전력이 일정하게 흘러야 하는데 발전량이 지나치게 많으면 출력 제한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버려진다.
국내에서도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제주도가 이 문제를 겪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출력 제한이 80차례 발생했다. 제주도가 비트코인 채굴 업체와 협력한다면 잉여 전기로 인한 수익성 문제를 해결하는 묘수가 될 수 있다. 비트코인 채굴 수익으로 발전 비용을 낮춘다면 재생에너지 전환도 촉진할 수 있다.
나아가 비트코인 채굴이 에너지 발전에 기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기업들은 원유를 채굴할 때 나오는 천연가스를 태워버린다. 가스를 저장하고 운반하는 인프라를 설치하는 비용이 판매 수입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그런데 최근 에너지 기업들이 폐가스를 태우면서 생산한 전기를 비트코인 채굴에 활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미국 최대 석유 기업 엑손모빌은 지난해 1월부터 노스다코타주 바컨 지역에서 폐가스를 활용해 매년 수천대의 비트코인 채굴기를 가동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도 지난 6월부터 시베리아 석유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폐가스를 활용한 전기를 비트코인 채굴 업체에 제공하고 있다.
비트코인 채굴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없다. 전기와 인터넷만 연결되면 어디서든 채굴이 가능하다. 짧은 시간 채굴기를 가동하더라도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 있다. 낭비되는 전기와 에너지를 소비해줄 수 있는 유연한 소비처다.
남는 전기는 지구 반대편으로 보낼 수 없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가능하다. 비트코인 채굴이 에너지 산업을 재편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