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설치된 경찰통제선 앞에 추모객들이 놓고 간 국화와 술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셨지 않느냐.” 그래서 ‘이태원 참사’는 검찰이 아니라 경찰이 ‘셀프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말했다. 맞는 말일까.
틀렸다. 검찰은 이 사건을 처음부터 수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안 했다. 왜 그렇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찬찬히 뜯어보기로 한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으로 검찰청법에서 ‘대형 참사’가 빠진 건 맞다. 그럼에도 이태원 참사 사건 수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경찰공무원이 범한 범죄”, “부패범죄”가 현재도 검찰청법상 검사의 수사대상이기 때문이다. 경찰의 치안업무 수행에 과실이 있었는지(‘업무상과실치사상’) 여부는 당연히 포함된다. 직무를 고의로 방기한 공무원(직무유기), 관련 증거나 문서 등을 파기해 없애라고 지시(직권남용)하거나 실행한 사람(공용서류 무효), 거짓 보고서를 만들고 보고(허위공문서 작성)한 경우 등도 모두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
지난 9월8일, 대통령령(‘검사의 수사 개시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으로 이 범죄들이 모두 ‘부패범죄’ 항목에 추가됐기 때문이다. 당시 검수완박을 시행령으로 무력화했다며 떠들썩하게
보도됐다. 이 개정, 바로 한 장관이 주도했다.
검찰청법 제4조(검사의 직무) ①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다음 각 호의 직무와 권한이 있다.
1. 범죄수사, 공소의 제기 및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 다만,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는 다음 각 목과 같다.
가.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
나.
경찰공무원(다른 법률에 따라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행하는 자를 포함한다)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소속 공무원(‘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파견공무원을 포함한다)이 범한 범죄
다. 가목·나목의 범죄 및 사법경찰관이 송치한 범죄와 관련하여 인지한
각 해당 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시행 2022.9.10.] [대통령령 제32902호,
2022.9.8. 일부 개정]
제2조(중요 범죄) ‘검찰청법’(이하 “법”이라고 한다) 제4조제1항제1호가목에서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란 다음 각 호의 범죄를 말한다.
1. 부패범죄: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범죄로서 별표 1에 규정된 죄
[별표 1] <신설 2022.9.8.>
부패범죄: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범죄로서
별표 1에 규정된 죄: 형법 제122조(직무유기), 제123조(직권남용), 제127조(공무상 비밀의 누설), 제141조(공용 서류 등의 무효, 공용물의 파괴), 제227조(허위공문서 작성 등) 및 제229조(위조 등 공문서의 행사; 제227조의 죄에 의하여 만들어진 문서 또는 도화를 행사한 경우로 한정한다)에 해당하는 죄
그뿐이 아니다. ‘경찰 공무원이 범한 범죄’, ‘부패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 역시 검찰이 수사 직무와 권한을 갖는다.(검찰청법 제4조 1항) 그럼,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란 무엇일까. 해답은 ‘검사의 수사개시에 관한 지침’이라는 대검 예규에 있다. 앞서 본 대통령령 개정 직후 이 역시 개정됐는데, 무슨 곡절인지 ‘비공개’로 해놓는 바람에 어렵게 구해서 봤다.
검사의 수사 개시에 관한 지침
(대검예규 제1311호,
2022.9.10. 개정)
제1조(목적) 이 지침은 검찰청법 제4조제1항제1호,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에 관한 규정’(이하 ‘수사개시 규정’이라고 한다)에 따른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를 판단하는 세부 기준 및 관련 처리절차에 대한 세부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7조(
직접 관련성의 판단 기준) ① 검사는 검찰청법 제4조제1항제호 가목·나목의 범죄(부패범죄, 경찰공무원이 범한 범죄와) 및 사법경찰관이 송치한 범죄와 범인·범죄사실·증거 중 어느 하나 이상을 공통으로 하는
등 합리적 관련성이 있는 범죄의 경우 법 제4조제1항제1호 다목에 따른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로 보아 수사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는 동일한 장소에서 354명이 숨지거나 다친 단일 사건이다. 원인 제공과 직무소홀의 증거, 범죄사실이 공통될 것이라는 점은 상식에 속한다. 또 주된 수사대상인 경찰의 업무상 과실과 대통령실, 행정안전부, 소방서 등의 원인 제공에 따른 형사 책임은 ‘합리적 관련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경찰의 업무상 과실과 관련돼 참사 원인을 제공한 행정기관과 민간인은 공범으로 처벌될 공산이 크다. 이 ‘과실범의 공동정범’론은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 등 대형참사에서 모두 대법원이 받아들여 공무원에서 민간인까지 관련자에 대한 폭넓은 처벌이 이뤄졌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을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지난 2일 오후 종로구 서울경찰청에서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먼저 법원에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수사를 개시했기 때문에 검찰 수사가 불가능하다고 여권 일부가 주장한다. 형사소송법의 “제197조의 4(수사의 경합) ② (…) 사법경찰관이 영장을 신청한 경우에는 해당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을 계속 수사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든다.
그런데 이 조항에 대해 관련 대통령령(‘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은 ‘대형참사’ 등 중요 사건의 경우 경찰이 검찰에 송치하기 전이라도 “수사할 사항과 대상, 법령 적용 등에 관해 상호 의견을 제시·교환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사실상 검찰의 수사 지휘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를 근거로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할 수도 있다.
같은 대통령령에는 또 “이견이 있으면 (검경은) 서로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 상대방의 협의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시행 2021.1.1.] [
대통령령 제31089호, 2020.10.7. 제정]
제7조(중요사건 협력절차)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대형참사… 등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거나 국가적·사회적 피해가 큰 중요한 사건(이하 “중요사건이라 한다)의 경우에는 송치 전에 수사할 사항, 증거수집의 대상, 법령의 적용 등에 관하여 상호 의견을 제시·교환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
제8조(검사와 사법경찰관의 협의) ①검사와 사법경찰관은 수사와 사건의 송치, 송부 등에 관한 이견의 조정이나 협력 등이 필요한 경우
서로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협의 요청에 응해야 한다.
1. 중요 사건에 관하여 상호 의견을 제시·교환하는 것에 대해 이견이 있거나, 제시·교환한 의견의 내용에 대해 이견이 있는 경우
(……)
② 제1항제1호,(…)의 경우 해당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협의에도 불구하고 이견이 해소되지 않는 경우에는 해당 검사가 소속된 검찰청의 장과 해당 사법경찰관이 소속된 경찰관서의 장의 협의에 따른다.
“경찰 수사 자체가 의심받는 특별한 상황이니까, 검찰이 경찰에 사건 이송을 요구하거나 대통령이 한 장관을 통해 검찰총장에게 사건을 넘겨받도록 지휘해 검찰 직접 수사로 정리하는 게 맞다. 검경 합동수사본부 구성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전직 검사장·변호사)
역대 대형 참사에선 대부분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졌다.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 서해훼리호 침몰, 대구 가스폭발, 대구 지하철 화재, 용산참사, 세월호 등에서는 검찰이 경찰을 지휘해 수사했다. 예외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경찰이 수사대상이 되면 검찰이 별도 수사팀을 꾸려 직접 수사했다. 세월호 때는 광주지검이 해경을, 용산참사 때는 서울중앙지검이 경찰을 각각 수사해 처벌했다.
그래서 검찰에는 ‘대형 참사’ 수사의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SBS-넥스트리서치)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의 주체로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가장 높은 지지(30.1%)를 받은 것도 이런 역사가 국민들 기억에 살아 있어서다.
윤 대통령, 한 장관 같은 법 전문가가 이걸 모를 리 없다. 특히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이던 지난 2020년 2월, 세월호 사건 당시 해경청장을 지낸 김석균씨 등 전직 해경 지휘부 11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했다.(이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김 전 청장 등은 당시 현장 구조 지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잘못이 크다고 검찰은 설명한 바 있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왜 이번에는 경찰 수사를 계속 경찰에 맡겨두는 것일까.
“검사들의 위험성을 알기 때문이다. 검찰이 윤 대통령 사조직도 아니고, 실제 윤 사단은 지휘부 중심의 소수일 뿐이다. 경찰이 그날 밤 이태원 10만 인파에 왜 집중하지 못했는지, 거기 투입돼야 할 경력(경찰병력)이 왜 제때 투입되지 못했는지, 그런 ‘사전 조치’를 파고 들면 대통령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때의 윤석열 같은 검사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있나. 세월호 수사 때도 수사 검사들이 ‘업과사’(업무상 과실치사상) 적용을 끝까지 고집하니까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인 전례도 있다. 요즘은 검사들이 말을 듣지 않아도 직권남용죄가 무서워 (상사들이) 함부로 찍어 누를 수도 없다. 민주당이 밀어붙인 ‘검수완박’을 자꾸 들먹이며 국민을 상대로 ‘정치 장사’를 해서 재미를 보려는 속내도 깔려 있을 것이다.”(전직 고검장·변호사)
당장은 효과 만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 특수본 수사는 ‘사전 조처’를 제쳐둔 채 ‘사후 대응’만 캐고 있다. 그마저 연일 뒷북에, 만만한 일선 하위직만 타깃이다. 사건 발생 열흘 만에야 경찰청장실을 압수수색한 경찰에 무슨 기대를 더할까. 그저 검찰 수사가 싫은 민주당은 한참 먼 특검만 찾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초동 수사가 망가지면 특특검이 와도 진실 규명은 요원해진다. 그러는 사이 수사의 ‘골든 타임’은 빠르게 지나가고, ‘뒷짐 진 용산서장’ 화면 같은 수사 정보가 하나씩 흘러 나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한 장관, 볼수록 참 영리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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