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총리 관저 누리집 갈무리
[특파원 칼럼] 김소연 | 도쿄 특파원
“좀 고독하고 힘들 때도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최근 모교인 와세다대 출신 의원 등을 만나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뭘 해도 지지율이 떨어지는데다, 한달 새 불미스러운 일로 각료 3명을 경질시켰으니 그런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사안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면 그 답답한 상황은 총리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치솟았던 시기가 있었다.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를 보면, 취임 직후인 지난해 10월 52%로 출발했던 내각 지지율은 56%→62%→66%로 연말·연초 고공행진을 했다. 기시다 총리의 ‘듣는 힘’이 여론을 움직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 12월 임시국회 최대 쟁점이던 18살 이하 대상 코로나19 지원금(10만엔) 문제가 대표적이다. 애초 현금과 쿠폰을 5만엔씩 주는 방안으로 추진됐으나,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신속하게 전액 현금 지급으로 정책을 수정했다.
자민당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실책을 인정한 것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20년 4월 코로나 대유행 당시 아베 총리는 마스크 부족을 해소한다며 일방적으로 ‘천마스크’를 대량 주문했다. 하지만 품질이 나빠 재고가 쌓였고 오히려 상당한 액수의 보관료를 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반성해야 할 지점이 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그 뒤 천마스크는 폐기 처분됐다. 자민당 내 소수파인 ‘고치카이’ 출신이라 정치적 타격이 우려됐을 텐데 민심을 먼저 생각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강한 제재와 코로나19 감염자 감소까지 겹치면서 올해 7월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무난히 승리했고 ‘장기 집권’ 얘기도 심심찮게 나왔다.
분위기가 급변한 것은 아베 전 총리가 선거 유세 과정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뒤다. 그가 숨지게 된 주요 원인이었던 통일교와 자민당의 유착 의혹이 연일 폭로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주변 일본인 지인들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유착의 역사가 깊고, 광범위했다는 사실에 일본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데도 기시다 내각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대응했다. 말로는 통일교와 고리를 끊어내겠다며 대대적인 개각을 단행했지만, 각료들 가운데 통일교 관련자들이 계속 발각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지난달 사임한 야마기와 다이시로 경제재생담당상이다. 결국 경질됐지만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여기에 아베 전 총리의 국장 문제로 민심은 기시다 총리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 7월에 국장이 결정되고 9월에 시행되기까지 두달 동안 국민의 60~70%가 ‘국장 반대’를 외쳤지만 기시다 총리는 강행했다.
민심을 외면한 대가는 컸다. 내각 지지율은 20~30%대까지 하락했다. 29조엔(약 279조원) 규모 경제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지지율이 오르기는커녕 더 떨어졌다. “정책을 기대할 수 없다”(33%), “총리에게 지도력이 없다”(24%)는 반응이 나왔다. 일본 국민 43%는 기시다 총리가 “빨리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민심의 무서움은 신뢰가 한번 무너지면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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