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3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긴급 임시 중앙집행위원회를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민노총 중앙위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임시 중앙집행위를 통해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 반헌법적 폭거”라며 대정부 투쟁을 강화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손아람 | 작가
1. ㄱ기업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인력감축안을 발표했다. 수십년 동안 ㄱ기업에 몸담았던 장년의 해고자들은 재취업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저임금 일용직으로 내몰려 월 소득이 줄어드는 경제적 손해를 입게 됐고 일부는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파산했다. 이 노동자들은 줄어든 소득분과 파산의 책임을 물어 해고를 결정한 ㄱ기업 대표의 불법을 주장할 수 있을까? 물론 터무니없는 소리다.
2. ㄴ기업의 소비자 정책에 불만을 가진 고객들이 소비자단체를 결성하고 불매운동을 개시했다. 이로 인해 ㄴ기업은 커다란 경제적 손해를 입게 됐다. ㄴ기업은 불매운동을 벌인 소비자들이 불법행위를 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역시 터무니없는 소리다.
3. ㄷ기업과 거래 관계에 있는 개인사업자들이 거래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단체로 일을 거부했다. 일종의 파업이다. 이로 인해 ㄷ기업 영업에 차질이 발생해 ㄷ기업과 ㄷ기업이 만든 제품 소비자, 더 나아가 국가경제에 손실이 발생했다. 그러므로 이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불법을 저질렀다고 볼 수 있을까? 이번엔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다. 현재 진행형인 문제다. 화물연대 파업 이야기다.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하자 정부와 여당은 즉각 파업의 불법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불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윤석열 대통령), “섬뜩한 국가파괴 선동” “불법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우리 경제와 국민을 인질로 잡고 벌이는 불법파업”(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정부는 불법행위에는 한치의 물러섬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길 바란다”(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마침내 윤 대통령은 29일 “불법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며 파업을 강제로 중단시키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파업 중 불법행위가 일어난 것’과 ‘파업이 불법인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정부와 여당은 파업 참여자 12명이 폭행 및 재물손괴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는 사실과 파업으로 인해 경제에 부담이 가중된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는데, 그렇다 해도 2만5천명이 참여한 파업 전체를 불법으로 단정해 강제로 중단시킬 근거는 될 수 없다. 파업의 합법 여부를 둘러싼 주된 쟁점은 노동자들이 기업이 소유한 생산수단을 물리적으로 점거하는 행위를 합법적인 쟁의로 볼 수 있는가다. 파업 노동자에게 점거 농성은 기업을 압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기업은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로 맞대응해왔으며,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을 두고 정부·여당과 야당들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는 재산권 침해 논란을 일으킬 점거 행위가 없다. 대부분 개인차주인 화물연대 구성원들이 자차 운행을 중단한 ‘정직한’ 쟁의다. 파업이란 단어의 뜻 그대로 ‘일하지 않는’ 시위다. 그것도 업무에 자신의 사유재산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시위다. 노동권 아니라 시장경제 관점에서도 납득할 만한 내용이다. 내가 내 차를 사용해 일하지 않는 게 어떻게 불법이 될 수 있는가? 합법적인 파업은 어떤 파업인가? 단 한건의 폭력이나 소요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누구에게도 직간접적인 손해를 입히지 않는 파업인가? 그렇다면 합법적인 파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기준을 적용하면 합법적인 정리해고도, 합법적인 불매운동도, 합법적인 길거리 축구 응원도 불가능하다.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할 자유를 갖는 것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을 자유도 갖는다. 국가경제 위기, 국가물류 마비, 국가파괴 선동, 국가를 접두어로 한 험악한 말들을 아무리 잔뜩 만들어내도 적당한 조건이 아니면 일하지 않겠다는 개인들의 선택이 불법이 될 수는 없다.
앞으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하는 파업 참여자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파업이 불법인 게 아니라, 정부가 파업을 불법으로 만들었다. 그간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입법 요구를 노사문제로 치부하며 깊이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던 윤 대통령은 정작 파업이 발생하자 누구보다 빠르고 깊게 개입했다. 대통령이 자주 말해왔던 자유국가는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진다. 국민이 권리를 달라고 요구할 때만 자유국가 행세를 하다가 국민이 권리를 쟁취하려 들면 물리력을 동원해 막고 나서는 국가는 자유를 반만 허용하는 나라가 아니다. 자유를 억압하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