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쪽 류큐군도의 아마미오섬에 사는 멸종위기 설치류 아마미 가시쥐는 와이(Y) 염색체 없이도 암수컷 분화를 이루는 성 결정의 유전학적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홋카이도대학 제공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쇠락하는 와이(Y)염색체는 1000만년 뒤 사라질 것이다.’ 2002년 오스트레일리아 라트로브대학의 제니퍼 그레이브스 교수는 <네이처>에 남성을 결정하는 Y염색체가 수억년에 걸친 포유류와 영장류 진화 과정에서 쇠락해왔으며, 쇠락 속도로 볼 때 Y염색체는 1000만년 안에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예측을 제시했다. 인간 Y염색체는 1000개 안팎 유전자를 갖춘 엑스(X)염색체에 비해 10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칠 정도로 아주 왜소해, 그동안 Y염색체의 불안한 미래를 두고 과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게 제시됐다.
Y염색체 종말론에 쐐기를 박을 만한 반박이 2012년에 나왔다. 미국 화이트헤드연구소의 데이비드 페이지 소장(매사추세츠공대 교수) 연구진은 사람과 동물 8종의 염색체를 비교해보니 Y염색체가 2억~3억년 동안 대량의 유전자 소실을 겪었지만, 쇠락이 2500만년 전에 멈추고 안정기에 들었다는 분석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2014년 같은 연구진은 Y염색체에 단지 성 결정 유전자만 있는 게 아니라 인체에 중요한 다른 유전자들도 담겨 있음을 자세히 밝혔다. Y염색체가 진화 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충분한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잠잠해지던 Y염색체의 미래에 관한 관심이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된 일본 홋카이도대학 연구진의 새로운 발견으로 다시 일어나는 듯하다. 이 대학의 구로이와 아사토 교수 연구진은 Y염색체 없이 암수컷 성 분화를 이루며 사는 희귀한 쥐의 암수컷 유전체를 샅샅이 비교 분석했다. 일본 남쪽 아마미오섬에 사는 아마미 가시쥐(Tokudaia osimensis)는 포유류이면서도 암수컷 모두 성염색체를 X염색체 하나만 지니는 희귀 동물로 알려져 있다.
암수컷 유전체 비교에서는, 남성 고환 발달을 일으키는 유전자(Sox9)에 스위치 구실을 하는 유전 인자(인핸서)가 그 유전자 바로 앞쪽에 두 벌로 복제돼 존재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동물실험에서는 이 스위치 유전 인자가 암컷을 수컷으로 바꿀 수 있었다. 본래 Y염색체에 있던 스위치 유전자의 기능이 다른 염색체로 자리를 옮겨간 것이다.
Y염색체 없이 성 분화를 하는 포유류 동물은 아마미 가시쥐와 유럽 두더지들쥐를 비롯해 4종이 보고된다. 이 동물들은 Y염색체의 먼 미래 운명을 비춰주는 사례일까, 아니면 고립 환경에서 사는 희귀 동물의 예외 사례일까? 아직은 더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다만 이번 연구는 성 결정이 X·Y 성염색체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한가지 방식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Y염색체의 먼 미래에 대한 관심이 가시쥐를 통해 다시 일어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