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정부가 알려줬지, 화물노동의 가치

등록 2022-12-15 19:18수정 2022-12-16 10:18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종료한 지 사흘째인 12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종료한 지 사흘째인 12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삶의 창] 김소민 | 자유기고가

염치는 왜 약자만의 몫인가?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를) 3년 연장하는 방향으로 가자고 주장할 염치는 없다고 본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2일 이렇게 말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가 최저임금 수준을 받으며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현실을 개선하려고 컨테이너와 시멘트 화물차에 한해 도입됐다. 이런 상황에서 화물노동자가 과속, 과적 운행을 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지난 6월 화물연대가 1차 파업을 했을 때 정부는 안전운임제 폭 확대 등을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6개월 동안 국토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1차 교섭 때는 “권한이 없다”며 자리를 떴다. 국토부는 안전운임제 폐지 수순을 밟으며 이제야 운송협의체를 구성해 개선책을 마련해 가겠다는데 그 개선책이 언제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언제일지 모를 그날을 기다리며 화물노동자들은 아무 대책 없던 예전처럼 일하란 말일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건 국가의 책임 아닌가? 이들은 국민이 아닌가? 국가가 ‘염치’가 있으려면,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요구하기도 전에 이들이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임금이 얼마이면 ‘귀족’ 노동자가 되는가?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시행 뒤 12시간 이상 운행 비율이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산업용 화물차 교통사고 사망자는 늘었는데 이 통계에는 안전운임제 적용을 받지 않는 차량까지 포함돼 있다. 다른 변인이 통제되지 않았으며 안전운임제의 교통안전 효과를 확인하기에 기간이 짧다는 반론이 나왔다. 이 통계를 근거로 <동아일보>는 “일반화물차주 월평균 순수입(유가보조금 포함)은 378만원으로 2019년 289만원에 비해 89만원(30.8%)이나 올랐다”며 “결국 3년간의 안전운임제 시행은 차주들의 주머니만 불려준 셈”이라고 썼다. 나는 차주들의 ‘주머니를 불리면’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 정부는 이들이 일을 안 하면 “국가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에 따르면 이들이 일을 안 하는 건 한국에 “북핵급” 위협이다. 산업계와 정부는 화물연대가 2주 동안 파업하는 바람에 무려 4조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했다. 그만큼 한국 경제에 중요한 노동이라고 정부가 인증한 거 아닌가? 그런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월 378만원을 버는 게 ‘주머니 불리기’인가? 대기업 대졸 초봉 수준 임금인데 이 신입사원들은 한국 경제에 화물노동자들만큼 기여하는가? 안전운임제가 도입되기 전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고 월 289만원 받던 게 후려치기 아니었을까?

화물연대가 파업을 거두자 대통령실은 ‘법치주의의 승리’라고 자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과 타협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화물연대가 복귀했어도 손해배상, 형사처벌 등을 강행하겠다고 예고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것 자체가 헌법 정신에 반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부 말대로 이들의 파업이 불법이라고 치자. 이토록 원칙을 중시하는 대통령은 국정농단 뇌물수수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지난 8월 사면했다. 당시 정부는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한국 경제에 화물노동자들의 노동도 그 회장님들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뇌물죄는 사면할 수 있어도 안전을 요구하는 파업은 “떼쓰기”이자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인가?

가수 이랑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는 지난 10월16일 부마민주항쟁 43돌 기념식에서 불릴 예정이었다. 행정안전부 개입으로 무산됐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 노래 속에서 억울한 사정을 토로하며 성문을 두드리는 약자들에게 이런 비난이 쏟아진다. “폭도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계엄 거부하고 법무부 사직서…난 반국가세력일까 [류혁 특별기고] 1.

계엄 거부하고 법무부 사직서…난 반국가세력일까 [류혁 특별기고]

한강은 보았다…계엄군의 머뭇거림을 [특파원 칼럼] 2.

한강은 보았다…계엄군의 머뭇거림을 [특파원 칼럼]

내란에 개입한 ‘군내 사조직’, 이 역시 윤석열 책임이다 [사설] 3.

내란에 개입한 ‘군내 사조직’, 이 역시 윤석열 책임이다 [사설]

‘어준석열 유니버스’ 너머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4.

‘어준석열 유니버스’ 너머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한덕수 권한대행, 내란·김건희 특검법 즉각 공포하라 [사설] 5.

한덕수 권한대행, 내란·김건희 특검법 즉각 공포하라 [사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