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각) 중국 베이징의 한 약국 선반이 거의 비어 있다. 중국이 강력한 방역 정책을 폐기하고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면서 병원과 약국을 찾는 시민들이 많아지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특파원 칼럼] 최현준 | 베이징 특파원
중국 수도 베이징 거리가 한층 조용해졌다. 오가는 사람과 차가 눈에 띄게 줄었고 개점휴업인 식당과 아예 문을 닫은 상점이 적지 않다. 거리를 활보하던 배달원도, 분주히 오가던 택배 아저씨도 이전보다 많이 줄었다. 지난 7일 중국 정부가 확진자의 자가격리를 허용하는 등 코로나19 봉쇄를 완화한 조처 10가지를 발표한 이후 생겨난 변화다. 이 조처로 중국은 사실상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지하고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선회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왜 거리는 더 조용해졌을까?
한가해진 거리와 달리 베이징 곳곳의 아파트 단지와 주택이 밀집한 동네에서는 바이러스와의 각개전투가 한창이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확진자나 발열자가 없는 집을 찾기 어렵고, 확진된 가족과의 분리를 포기한 채 감기약과 해열제로 버티는 가족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2020년 초 마스크 대란 때의 한국처럼, 미처 해열제나 감기약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 동네 약국을 순회하고, 발열 환자 진료소 앞에 100여명의 긴 줄이 선다. 제로 코로나를 풀어 어디든 갈 수 있게 됐지만, 아무 데도 갈 수 없게 된 이유다.
중국의 코로나 수성전이 2년10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장 튼튼하게 성문을 닫았던 중국은 가장 늦게 문을 연 국가가 됐다. 바이러스의 살상 능력이 확연히 낮아졌다는 이유였다. ‘전투고 뭐고 굶어 죽게 생겼으니, 인제 그만 성문을 열라’는 시민들의 성난 요구가 한몫했다. 더 버텼다가는 그동안 전투를 이끈 시진핑 국가주석의 평판까지 깎일 듯한 기세 앞에 중국 당국은 성문을 가로지른 빗장을 갑작스럽게 풀었다.
그동안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성적표는 나쁘지 않았다. 인구 10만명당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세계 최저 수준이고, 최근 2년간 경제 성장 역시 다른 국가들에 견줘 양호했다. 고강도 봉쇄로 인한 인권침해 등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적표는 지난 10월 시 주석이 3연임을 확정하는 데 매우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미뤄둔 숙제를 받은 중국이 마지막까지 문제를 잘 풀 수 있을까. 시점이 좋지 않다. 혹독한 대륙의 추위가 시작됐다. 오미크론 변이 외에 독감 바이러스가 함께 찾아왔다. 실내에 사람들이 모이고, 내년 초에는 최대 명절인 설을 지내야 한다. 이왕 열 것이었다면, 경제 중심 상하이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번지기 시작한 올해 4~5월이었으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그러나 중국의 방역 정책은 어느 나라보다 정치적이어서, 시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기 전에 제로 코로나 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사실상 없었다. 심지어 이를 기대한 이도 없었다.
가장 늦게 문을 열어 준비 시간을 확보한 중국이지만, 그만큼 준비를 튼튼히 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계속 지적되어온 문제인, 바이러스에 약한 노인들의 백신 접종률이 여전히 높지 않고, 중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상 수는 내내 제자리걸음이다 최근 한달 사이에야 두배 이상 늘렸다. 지난 2년여 동안 성을 높게 쌓는 데 막대한 돈을 쓰느라, 정작 성문을 연 이후 필요한 투자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로 코로나 정책이 ‘무수한 생명을 구한 최고의 인권 정책’이라고 자부하는 중국 당국이 더 효과가 좋다는 미국·독일산 메신저아르엔에이(mRNA) 백신은 여전히 수입 목록에 올리지 않고 있다. 정치 방역이라는 지적을 받는 또 하나의 대목이다.
사회 모든 지표를 국가가 관리하는 중국 특성상 코로나 방역과 관련한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될 것 같진 않다. 다만 중국 주민들은 이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끼고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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