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훌륭한 탄소저장고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초지 1㎡당 연간 최대 40g의 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 특히 콩을 재배하는 초지는 탄소흡수량이 39% 증가한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농지의 탄소 흡수 기능은 더욱 향상된다. 유기농이 기후위기의 좋은 대응 수단인 것이다. 지난 6월 충남 홍성군 장곡면 홍성유기농영농조합에서 주민들이 생협 매장에 납품할 쌈채소 등을 포장하고 있다. 홍성/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마당 구석에 솥을 걸고 노란 은행알을 삶는다. 냄새가 고약하다. 푹 끓어 우러난 거무스름한 물을 플라스틱 병에 담는다. 가을걷이, 김장도 끝난 산간마을의 겨울. 내년 농사에 대비해 뭔가 뚝딱거리기 좋은 시간이다. 이번엔 친환경 농약 만들기.
유튜브를 보니 은행 삶은 물이 천연 살충제라 한다. 외래종인데 근래 기승을 부리는 선녀벌레에 잘 듣는다 해서 솔깃했다. 하는 김에 유황액과 전착제도 만들어봤다. 유황, 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 가성칼리(수산화칼륨) 같은 ‘낯선’ 재료는 저비용 유기농을 추구하는 한 단체를 통해 구할 수 있었다. 보통 물이 아닌 연수를 구하는 게 어려웠지만, 조제는 매뉴얼대로 하니 할 만했다. 사람에게 해가 없는 유황액에 약효를 높이는 전착제를 섞어 뿌리면 진딧물, 탄저병 등 여러 병충해를 예방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 한다.
‘5도 2촌’으로 농사짓기 3년, ‘초심’이 흔들린다. 농약과 화학비료는 멀리하리라 했지만, 역시 막연한 다짐이었다. 벌레가 바글거리고 병들어 말라비틀어지는 채소와 과수를 손 놓고 보기 어려웠다. 창고 서랍에 농약병이 시나브로 늘어갔다. 제초제만은 쓰지 않고 버티려 했는데, ‘원수 같은’ 오뉴월 풀은 깎고 돌아보면 또 자라난 듯했다.
마을에서 접하는 이른바 ‘관행 농업’은 화학농약과 비료 사용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무거운 예초기로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자면, 지나는 어르신들이 “풀약 하지 뭐 하러 그러냐?”고 안쓰러워했다. 일흔살이 젊다 할 만큼 시골이 고령화해 더욱 그리되는 것 같았다. 다만, 제초제를 ‘풀약’이라 부르고, “농약 친다” 하지 않고 “소독한다”고 순하게 표현해, 말로나마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는 듯했다. 농약과 비료를 맞춤하게 써서 키운 농산물은 알이 굵고 때깔도 좋았다. 바로 옆에서 농약, 비료 덜 주고 키운 얼치기 주말 농부의 그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농사 수입이 전부인 농민에게 이런 차이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마침 근처 성당에서 친환경 농업 특강이 있어 듣게 됐다. 교구 생태환경위원장인 신부님은 “한줌 흙에도 수십억마리의 미생물이 사는데,
이들이 건강한 흙은 작물도 튼튼하고 탄소 순환도 잘된다”며 “농약과 비료를 과하게 사용하는 것은 ‘생태 학살’로 이어져 기후위기를 심화한다”고 했다. 좌석 곳곳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지만, 왠지 마음뿐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래 앉아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 연로한 농민들이었다. 유기농에 뜻을 두고 귀농·귀촌한 이들도 힘이 부쳐 ‘관행 농업’으로 돌아선 사례가 적지 않다.
먹거리가 안전하고 좋아야 사 먹는 이들도 건강할 텐데, 생태환경의 최전선인 농산어촌은 기후변화로 힘겨워하고 있다. 최근 몇년만 해도 가뭄,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잦아지고 강해졌다.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고, 과수의 한계선이 북상하며, 바다의 어종이 바뀌는 등 자연과 맞닿은 삶의 터전은 한해 한해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여기에 고령화와 인구감소라는 사회적 요인은 토지의 생태균형을 무너뜨리고, 이는 기후위기를 심화하는 되먹임 순환이 벌어진다.
지난 1년간 전국한우협회가 구성한 ‘탄소중립위원회’에 참여했다. 소가 되새김질할 때 메탄이 덜 나오게 사료를 개량하고, 분뇨로 환경 부담이 적은 연료를 만드는 등 다양한 탄소 배출 저감 계획이 마련됐다. 축산이 기후위기 주범으로 몰리고 채식 인구가 늘어나는 데서 나온 위기대응이었지만, 스스로 먼저 나서는 노력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기후·생태위기의 관점으로 농산어촌을 대하는 시스템은 우리 사회가 좀 뒤처져 있다. 화학농약과 비료 가격은 계속 오른다. 그래서 농협은 해마다 적지 않은 액수의 구매 보조금을 농가에 지원한다. 유기농은 싸지 않아 누구나 사 먹지 못한다. 수입 농산물과 경쟁해야 하는 일반 농가는 ‘관행 농법’으로 크고 깨끗하게 길러내는 쪽을 택한다. 여전히 새벽에 농촌에서는 플라스틱과 비닐을 태우곤 한다. 도시만큼 분리수거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아서 그리한다.
도시와 지역이 결연을 맺어 작고 못생겼지만 좀 더 안전한 농산물을 사주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협동조합 방식으로 이어짐으로써 친환경 방식의 경작을 안정적으로 늘려가면 어떨까? 정부의 보조금을 이런 데 활용하면 소득이 적은 이들도 접근할 수 있겠다. ‘코로나19’가 준 교훈은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그리고 팬데믹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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