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입이 하는 일이 적지 않다. 먹기, 말하기, 노래하기, 숨쉬기, 사랑하기, 토하기. 물어뜯기도!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순간순간 다른 신체 기관과 연결되어야 한다. 입의 이런 역할은 단어를 만들 때도 발자국처럼 따라다닌다. ‘입요기’ ‘입가심’ ‘입걱정’ ‘입덧’ 같은 말은 ‘먹는 입’과 관련이 있다. ‘입바람’ ‘입방귀’는 ‘숨 쉬는 입’과 연결된다. ‘입맞춤’은 당연히 ‘사랑하는 입’이겠고.
인간은 말하는 기계인지라, ‘입’이 들어간 단어에는 ‘말하기’와 관련된 게 많다. 입단속이야말로 평화의 지름길이란 마음으로 ‘말하는 입’ 얘기를 중얼거린다.
아침 댓바람부터 입담 센 몽룡과 입놀림 가벼운 춘향이 입방아를 찧는다. 서로 꿍짝이 맞아 입씨름 한번 없이 하나가 떠들면 하나는 “오호! 그래?” 하며 입장단을 맞춘다. 두 사람의 입길에 오르면 멀쩡한 사람도 순식간에 몹쓸 사람이 되어 입소문이 퍼진다. 이번엔 길동이가 입초시에 올랐다. 입바른 소리만 하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미움을 사고 있다는 것. 입심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길동은 두 사람을 살살 구슬리는 입발림 소리도 해봤지만 입막음이 되지 않았다. 급기야 그렇게 입방정을 떨다가는 큰코다칠 거라고 겁박을 했더니 그제야 수그러들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직 자기 발밑을 살피는 길뿐이다(조고각하, 照顧脚下). 발밑만큼이나 입도 잘 살피시길. 입에 담지 못할 말은 입에 담지 않으며, ‘입만 살았다’는 비아냥을 안 듣기 위해서라도 몸과 마음이 함께 살아 있는 새해가 되길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