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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결혼만이 축하받을 일인가요

등록 2023-01-05 18:25수정 2023-01-05 19:02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삶의 창]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얼마 전 잘 지내지? 하고 카톡이 울렸다. 4년 이상 서로 연락이 없던 지인이었기에 촉이 왔다. 인터넷에는 오랜만에 연락할 때 ‘결혼식, 장례식, 돌잔치, 카드 만들기, 옥장판, 다단계, 보증, 보험, 종교 권유, 건강식품, 정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밝히는 게 매너라는 유머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는 모바일 청첩장을 전송했다.

보내는 쪽에서도 그간 연락이 없다가 청첩장을 보내는 것을 민망해했다. 나도 의례적인 축하 인사를 했다. 결혼식이라니, 그런 일이 내게도 닥친다면 연락이 뜸하던 사람들에게도 연락해야 하나 나도 고민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사이가 요원해졌더라도 적어도 내가 결혼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에게는 청첩장을 보낼 것이다. 카톡을 받았을 때 다른 일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결혼식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속 갈등을 겪었고, 단번에 ‘당연히 참석해서 축하해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 게 아니라면 결국 안 가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부채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서 그렇게 대화가 끝났다면, 모바일 청첩장이 주고받으며 별 감흥 없이 의례적으로 이뤄지는 카톡 대화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내가 등단하고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축하한다고 연락하지 않았던 것이 민망하다고 언급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도 맞다, 그랬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축하 문화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그 친구는 첫 책을 내기까지 힘든 일을 겪은 내 개인적인 맥락을 알고 있었고, 그런 친구라면 등단하고 첫 책을 출간하는 일이 내게는 누군가 취업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아서 생기는 부채감 같은 게 사라졌다.

과연 결혼은 더 특별히 축하받아야 할 일인가? 결혼과 임신과 출산은 분명 한사람 인생에 있어서 몇 안되는 큰 이벤트고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취업이 결혼보다 더 중요할 수 있고, 출간이 출산보다 더 중요한 이벤트일 수 있다.

최근 2년 넘게 매달린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실제로 품 안에 품고서 집필하는 동안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물성을 지닌 이 책은 남겠지’ 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 이 정도면 출산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조금 과장하자면 내 책이 나의 유전자를 가진 자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다. 청첩장을 주고받고 모여서 축의금을 내고 밥 먹고 축하하는 이 모든 건 관습적인 문화의 산물일 뿐이다. 등단과 출간에는 관습적인 축하 문화와 형식이 없었기에 나는 그 친구에게 청첩장을 보내 제대로 축하를 요청하지도, 축하를 받지도 못했을 뿐이다.

통계청 ‘2022년 사회조사’ 결과, 국민 절반만이 ‘결혼해야 한다’고 답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방송에서 비혼식을 치르는 게 새로운 풍경이라며 촬영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비혼 인구가 많아지면서 최근 한 대기업에서는 비혼을 선언하는 직원에게 결혼한 사람에게 주는 사내복지 혜택(비혼 축의금과 유급휴가)을 똑같이 준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그런 제도적인 변화와 더불어 사람들 사이 문화도 소소하게 바뀌어 가면 좋겠다. 나는 ‘20대에 취업해서 30대 중반이면 직장생활 몇년 차가 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하는 궤도에서는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결혼처럼 축하 문화는 없지만 축하받고 싶은 일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저 관습과 문화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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