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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누가 추경호 부총리를 ‘경제사령탑’이라 할까 [아침햇발]

등록 2023-01-08 14:46수정 2023-01-08 18:54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남구 | 논설위원

지난 3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세제 지원 강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은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올리고,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올 한해 한시적으로 도입해 투자 증가분에 대해 10% 추가 세액공제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추 부총리의 발표는 한국 경제사에 남을 하나의 사건이라 할 만하다. 왜일까?

나라살림연구소가 추정한 것을 보면, 반도체 세제 지원 강화 방안을 실행할 경우 삼성전자가 2조2천억원, 에스케이하이닉스가 5천억원의 추가 세 감면을 받게 된다. 합해서 2조7천억원의 세수를 줄이는 것이 된다. 3조8천억원이던 2018년 추가경정예산안보다 조금 작지만, 나라살림 운용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 규모다. 그런데 이를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자마자 추진하겠다고 했다.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율을 6%에서 8%로 올리는 세법 개정안이 올해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서 의결된 지 불과 11일 만의 일이다.

고쳐야 할 것은 하루빨리 고치는 게 옳다. 그런데 이번 일은 고쳐야 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에서 과세표준 3천억원 이상에 적용하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폭이 애초 정부가 주장한 3%포인트에서 1%포인트로 줄어든 것, 여당인 국민의힘이 대기업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율을 6%에서 20%로 올리자고 했으나 8%로 올리는 데 그쳐 경쟁국 대비 투자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고만 설명했다.

우리는 그 지적이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나온 것임을 잘 안다. 윤 대통령은 12월30일 “기재부가 관계 부처와 협의해 반도체 등 국가전략 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 말이 떨어진 지 불과 나흘 만에 세입에 큰 영향을 주는 수준으로 세법을 고치겠다는 건 주먹구구식 나라살림 운영의 적나라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추 부총리가 이끄는 기획재정부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반도체 세제 지원이 ‘세계 최고’라고 말해왔다. 추 부총리 자신도 12월27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세액공제는 특히 연구개발(R&D)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고, (다른 분야에서도) 절대 낮지 않은 수준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2012∼2016년 24.4%(지방소득세 법인분 포함)였고, 2017년부터는 27.5%였다. 실제 낸 법인세를 보면 에스케이하이닉스가 2012∼2021년 사이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의 17.6%를 냈다. 삼성전자는 19.4%를 냈다. 세 지원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외국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산업이고, 우리가 전략적으로 키워야 할 분야이니 세 지원을 많이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 있다. 그러나 얼마나 지원하는 것이 좋으냐는 지원 효과를 고려해서 판단할 일이다. 지원을 늘린다고 투자가 비례해서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으로 세 감면 지원을 늘리면 기업 순이익은 늘어나지만 그만큼 정부 세수가 줄어든다. 추경호 부총리가 이끄는 기획재정부가 대기업 투자세액공제율을 6%에서 20%로 올리자는 여당, 10%로 올리자는 야당안을 배척하고 8%만 올리는 법안을 낸 것은 바로 그런 판단에서였던 것이다. 인색해서가 아니라, 세정을 다루는 부처로서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하고 있지 않던가.

윤 대통령의 ‘지적’에 추경호 부총리는 나흘 만에 법 개정 방침을 밝혔다. 야당이 곧바로 ‘그럽시다’ 하고 환영하고 나설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데, 기획재정부는 마치 다 된 것처럼 발표했다. 이를 통해 대통령의 말을 충실히 따르는 장관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체면을 구긴 일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 정책이 조변석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말로만 경제사령탑’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추 부총리를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집행을 지휘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입을 더 쳐다보고, 경제운용에 대해 원하는 게 있으면 대통령에게 달려갈 것이다. 추 부총리는 왜 시간이라도 좀 끌어보지 못한 것일까?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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