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케이프땅다람쥐의 뒷발은 기온이 상승한 지난 20년 동안 눈에 띄게 커진 것으로 조사됐다. 큰 뒷발은 땅다람쥐 몸의 열을 땅바닥을 통해 좀 더 원활하게 발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춥거나 더운 곳에 사는 동물의 체형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발견은 생태학에서 오래된 법칙이 됐다. 1847년 독일 동물학자 카를 베르크만은 같거나 비슷한 종이라도 추운 곳에 적응한 동물이 체구가 크고 더운 곳의 동물은 반대인 경향이 나타난다는 규칙을 발견해 발표했다. 몸의 부피 대 표면적 비율을 줄이거나 늘려, 추운 곳에선 열 손실을 줄이고 더운 곳에선 열 발산을 늘린다는 것이다. 1877년에는 미국 동물학자 조엘 아사프 앨런이 기온이 높은 저위도에 살수록 열 발산을 원활히 하기 위해 팔, 다리 같은 말단 길이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규칙을 제시했다. 베르크만과 앨런의 법칙은 기온과 동물 체형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생태학의 흥미로운 주제가 되어 왔다.
지구 전체의 평균기온이 오르는 지구온난화로 동물 체형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생명과학 전문매체 <사이언티스트>가 기후변화 시대의 동물 체형 변화를 추적하는 최근 연구를 소개해 눈길을 끈다. 미국 미시간대학 생태학 연구진이 25만마리 넘는 새를 30년 동안 관찰한 자료를 분석해 지난해 10월 <네이처 생태와 진화>에 보고한 결과에서는, 북미 지역에서 새들의 평균 체질량이 0.6%가량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몸통이 작아져 날개는 상대적으로 더 길어지고 부리도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는 작지만 짧은 기간의 변화인 점을 생각하면 “충격적”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땅다람쥐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관찰됐다. 20년 동안 연구를 진행해온 캐나다 매니토바대학의 생태학 연구진은 땅다람쥐 몸통이 작아지고 뒷발은 상대적으로 커졌음을 확인해 지난해 11월 <포유류 저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대학 홍보자료에서 “우리는 기후변화의 모든 영향을 사소한 것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기온이 높으면 애벌레가 그만큼 빨리 자라는 바람에 곤충 몸집이 작아지는 경향이 배추나비와 벌 연구에서 보고됐다. 바다 동물의 체형 변화를 예측하는 시뮬레이션에서 베르크만과 앨런 규칙이 확인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여러 연구는 기온이 오르면 동물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행동 습성을 바꿔 적응하지만 때로는 체형 변화를 통해 달라진 기온과 기후에 적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생태학자들은 동물 체형 변화가 생태계의 다른 문제와 연결된다는 점을 주시한다. 곤충 체형 변화는 식물 꽃가루받이에 영향을 끼친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에 변화가 일어난다. 먹이사슬을 통해 이뤄지는 영양분의 장거리 이동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인간 사회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야생의 동물 세계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변화가 한창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