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현미경으로 포착한 수소 원자의 이미지(왼쪽, 2015년)와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에서 얻은 파형. 원자에서 실제로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가 나지는 않지만 원자 스펙트럼 데이터를 변환해 가상의 원자 음을 생성할 수 있다. 네이처, 질 린츠 제공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빛을 소리로 듣는다. 빛의 전자기파와 소리의 음파는 출처가 아주 다르지만, 빛의 전자기파를 음파로 변환해 소리를 만들어내는 색다른 작업이 물리학자와 예술인들 사이에서 관심을 끈다. 빛으로 관측한 39광년 거리 행성계의 궤도 운동이 장중한 음악으로 재현됐고,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고요하고 역동적인 우주 영상을 음악으로 들려주는 과학대중화 사업을 벌인다. 우주는 일종의 악보인 셈이다.
(한겨레, 2020년 12월2일치, ‘우주를 듣는 천문학자들’)
반대로 아주 작은 미시세계의 원자를 소리로 재현하는 작업도 있다. 최근 미국물리학회(APS)의 학술뉴스 매체 <피직스>는 한 물리학자가 수소부터 우라늄, 라듐까지 거의 모든 원자의 소리를 재현해 이른바 음향 주기율표를 완성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미국 뉴욕의 스키드모어대학에서 물리학과 음향학을 가르치는 질 린츠 교수가 주인공인데, 그는 30년 전인 1992년 원소마다 다르게 방출하는 전자기파의 스펙트럼을 음의 파형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햇빛이 프리즘을 지나면 파장이 다른 무지갯빛이 나타나듯이, 가열된 수소 기체에서 나오는 전자기파는 분광기를 거쳐 빛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낸다. 린츠 교수는 이를 다시 수소 원자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 파형으로 변환하고, 또다시 우리 귀에 들리는 가청 주파수로 바꾸어 소리로 재현하는 나름의 기법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엉뚱하게 보였던 작업이 이제 물리학 동료와 예술인의 관심과 격려를 받으며 음향 주기율표 완성에 이르렀다고 한다.
린츠의 누리집(academics.skidmore.edu/blogs/jlinz/)에서는 원자 음을 합성해 만든 원자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예술인과 함께 실험적인 작곡과 공연도 여럿 해왔다. 수소와 산소의 음계를 이용한 ‘물’이라는 제목의 창작곡도 있고, 탄소와 산소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오페라 작품도 있다. 2019년에는 미국음향학회에서 원자 음악에 관해 정식 논문을 발표했다.
물론 원자 음악은 데이터의 변환과 합성을 거친 것이고 실제로 원자에서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물리학과 음향학에서 원자 음악이 조명을 받는 이유는 무얼까? 먼저 시각장애인들에게 재현된 소리로나마 원자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예술인에게는 새로운 창작 재료가 된다. 시각에 주로 의존하는 과학연구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청각적인 발견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한 물리학자의 음악적 상상력이 수십년의 개인 연구를 거치며 예술과 교육, 그리고 물리학과 음향학 연구 분야에 다른 감각의 상상력과 다양성을 던져주고 있다.
원소들이 들뜬 상태에서 저마다 다르게 방출하는 전자기파의 스펙트럼 패턴을 표시해 만든 원소 주기율표. 미국 물리학자 질 린츠가 원소의 고유한 스펙트럼 패턴을 우리 귀에 들리는 가청 주파수의 음파로 변환해 만든 것이다. 미국음향학회(ASA)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