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명절 춘제(설날)를 이틀 앞둔 20일, 상하이의 홍차오 역에서 주민들이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상하이/AFP 연합뉴스
[특파원 칼럼] 최현준 | 베이징 특파원
참 부지런히도 받았다. 지난해 1월 베이징에 온 뒤, 이틀에 한번씩 코로나19 핵산(PCR) 검사를 꼬박꼬박 받았다. 식당이나 관공서, 버스, 택시 등을 이용하려면 ‘음성’ 결과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중국 정부의 방역 정책에 협조하고 나 스스로 건강을 지킨다는 생각도 있었다. 2100만명이 모여 사는 베이징뿐만 아니라 상하이(2400만명), 우한(1100만명), 충칭(3200만명) 등 중국 전역의 상황이 비슷했다. 중국 주민들은 매우 성실하게 정부의 방역 정책에 따랐다.
변화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지난해 11월 초 중국 정부는 의무적인 코로나 핵산검사를 전격 폐지했다. 베이징 거리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던, 핵산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음성 결과 없이는 들어갈 수 없었던 쇼핑센터 빗장도 스르르 풀렸다. 한달 뒤에는 코로나에 걸려도 병원이나 격리시설인 ‘팡창’에 끌려가지 않고 집에서 쉬며 치료할 수 있게 됐다. 다시 한달이 흐른 지난 8일에는 3년 동안 굳게 닫혔던 외국으로의 출국 관문이 열렸다.
기뻤지만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중국 당국은 오미크론 변이의 치명률이 낮아져 방역 정책을 바꾼다고 했는데, 오미크론 변이는 지난해 초부터 중국을 휩쓴 바이러스였다. 중국 당국의 설명대로라면, 지난해 말이 아니라 지난해 초 방역 정책을 풀었어도 되지 않았을까. 일년 가까이 출근 도장을 찍었던 코로나 검사는 왜 받았을까. 상하이 주민 2400만명은 꼭 두달 동안 집 안에 갇혀 있어야 했을까.
사실 중국 당국이 지난해 말에야 방역 정책을 바꾼 이유는 중국인 다수가 알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세번째 연임이 지난해 10월 말 확정됐고, 그 전에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행동을 최소화해야 했다. 코로나 방역 정책 전환은 결과를 알기 어려운, 매우 덩치가 큰 변수였다.
중국 당국은 자신들의 방역 정책이 철저하게 과학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선전하지만, 애초 ‘과학’만 있는 방역은 있을 수 없다. 정치와 과학이 병존하는 가운데, 최고 권력자 혹은 다수 여론이 무엇을 좀 더 앞에 놓을지 결정한다. 과학에만 기반을 둔 철저한 방역도 결국 정치적 결정이다. 분명한 것은 자연, 즉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는 정치가 아닌 과학에 가까울수록 피해를 줄이고 다수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어떨까. 최근 윤석열 정부는 중국이 자국민의 출국 제한 조처를 풀려고 하자, 이달 말까지 중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역시 과학 방역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이 결정에서 과학보다 정치를 앞세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세계에서 중국에 대해 비자 발급을 중단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중국발 입국자가 많다는 이유였지만, 중국인이 더 많이 찾는 일본도 비자 발급은 중단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세계에서 가장 철저한 방역 의식을 갖고 있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 했다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오미크론이 아닌 신종 변이가 퍼지고 있어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발 항공편에는 별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국에는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널리 퍼져 있고, 중국발 비자 중단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다. 코로나 초기 문재인 정부가 중국 쪽에 취한 유화적인 태도와도 강렬하게 비교된다. 과학보다 정치를 앞에 둔 결정으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 한국의 많은 기업인이 중국에 편히 오가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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