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말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을 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처음엔 얌전히 화를 내던 사람이 자기 말에 취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걸 본 적이 있을 거다. “보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이 더 보고 싶어지는 경우도 많다. 말은 감정을 격동시킨다. 들쑤신다.
안 믿기겠지만, ‘사랑’이라는 말 속에는 ‘우정’의 요소가 들어 있다. 사랑의 감정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라고 그에게 더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애인은 친구이자 동지이다.
사랑 속에 우정이 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남자친구, 여자친구’란 말이다. 맹랑하게도 이 말은 그냥 친구 사이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뜻한다. 사랑 속에 우정의 가능성이 없다면, ‘친구’라 쓰고 ‘애인’이라 읽을 수는 없다. 사랑 속에 있는 우정의 요소를 실마리 삼아 사랑을 대신 뜻하게 된다(환유).
한국 사회는 우정과 사랑을 대립시키고, 친구와 애인을 엄격히 구분해왔다. 이성애적 시각에서 남녀 간에는 우정이 성립될 수 없다고 믿어왔다(‘그게 본능이야. ‘결국’ 사랑하게 돼!’).
‘남사친’, ‘여사친’이란 말은 관계의 입체성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회에 바치는 젊은이들의 항복 선언이다. 사랑의 본원적 의미 속에 있는 우정을 분리 독립시켰다. ‘남친’이 사랑을 먼저 차지했으니, 사랑 없는 우정의 자리는 ‘남사친’이 채웠다. ‘남친’과 ‘남사친’이라는 두개의 말을 갖춤으로써 사랑과 우정은 합법적으로 갈라섰다. 하나 어쩌랴. 여전히 ‘남친’ 속엔 우정이, ‘남사친’ 속엔 사랑이 숨어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