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인권비상행동이 지난달 17일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시인권센터 위·수탁 과정과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라’라고 촉구하고 있다. 대전인권비상행동 제공
[전국 프리즘] 최예린 | 전국부 기자
“‘소수자’라는 프레임과 ‘약자’라는 감성적 접근으로 사회와 가정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잘못된 인권교육은 부모와 교사를 고발하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유로 교회를 혐오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김영길 대전시인권센터장이 <인권의 딜레마>라는 책에서 인권의 부작용이라며 설명한 내용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설정하고 인정하는 시대가 된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도 했다.
지난달 대전시인권센터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그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제정에 노골적으로 반대해온 바른군인권센터 대표로 활동했다. 책에서 김 센터장은 “학교에서 배우는 이념적인 인권은 부모의 권위와 정상적인 가정의 중요성을 사라지게 한다. 동시에 동성애와 프리섹스를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성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는 젠더를 ‘성별 자기결정권’으로 배운다. 그로 인해 청소년들의 자아가 파괴되고 있다”며 “동성애 행위는 분명 멀리하고 죄악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지도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올해부터 대전시인권센터 운영 새 수탁기관으로 선정된 한국정직운동본부 역시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목소리를 높여온 단체다. 이 단체 박경배 대표(대전송촌장로교회 담임목사)는 2018년 10월 ‘가증한 일, 동성애’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동성애자들도 평등하고 소수자·약자로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성애가 인권일까?”라며 “나 개인이 행복하다고 사회적·도덕적으로 인정할 수 없고 법적 체제를 무시하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 혐오감을 줘서도 안 된다. 마약을 복용하는 것과 음주운전을 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은 교회와 가정을 파괴하기 위한 사탄의 전략”이라고도 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광역지방자치단체 인권센터 운영자가 될 수 있다니, 믿기 힘들지만 이장우 시장이 이끄는 대전의 현실이다. 지난해 11월 인권센터 새 수탁자 선정 소식이 알려지자 “반인권단체가 인권센터를 운영하는 초유의 일이 대전에서 벌어졌다”는 말까지 나온 이유다.
2017년 인권센터 개소 때부터 운영을 맡아온 대전와이엠시에이(YMCA) 유지재단을 제치고 한국정직운동본부를 새 수탁기관으로 선정한 것을 두고서도 여러 뒷말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대전시가 인권센터 수탁기관 모집 공고를 내기 직전에야 법인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전시인권센터는 ‘대전시 인권보호 및 증진 조례’에 따라 설립돼 △인권침해 사례의 접수·상담과 연구·실태조사 △인권 관련 교육·홍보 △인권 보호 및 증진 프로그램 개발 등을 담당한다. 인권센터 새 수탁자를 선정하면서 대전시는 적격성(20점), 사업수행 능력(50점), 사업실적(20점), 재정능력(10점) 등을 평가했다고 한다. 인권이 아닌 ‘정직’ 운동을 해온 단체가 어떻게 인권센터 운영기관이 될 수 있었을까?
강병헌 대전시 인권증진팀장은 “인권은 일반적인 국민 입장에서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특별한 전문성이 없어도 어느 기관이라도 다 할 수 있는 업무”라며 “이 단체가 동성애·차별금지법 반대 활동을 한 사실을 알지 못했고, 심사위원에게 관련 정보를 전달하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대전시는 인권센터 선정 과정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도 있다. 한국정직운동본부가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이장우 현 대전시장을 공개 지지했다는 것이다. “(지난 4년) 인권과 평등에 대한 편향된 인식, 조직을 위한 시민 혈세 낭비는 실망을 가져왔다. 이 후보는 정직과 올바른 가치로 충절의 대전을 회복시킬 자질이 있음이 검증됐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올바른 가치와 정직한 권리를 지킬 적임자”라면서.
반년 뒤 이 단체는 대전시인권센터의 수탁자로 선정됐다. 그 과정에서 어떤 셈법이 작동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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