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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길 위의 마음을 거듭 헤아린다면 [김탁환 칼럼]

등록 2023-02-14 18:40수정 2023-02-15 02:36

반문하고 싶다. 녹사평역 광장이 고인들을 애도할 만한 장소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이태원 골목은 159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을 만한 장소인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6일 오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서울시의 시민분향소 철거 예고를 규탄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지키겠다는 의미로 서로 목도리를 묶어서 잡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6일 오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서울시의 시민분향소 철거 예고를 규탄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지키겠다는 의미로 서로 목도리를 묶어서 잡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김탁환 | 소설가

섬진강은 두꺼비와 인연이 깊다. 강으로 몰려오는 왜구를 두꺼비들이 일제히 울어 내쫓았다는 전설이 ‘두꺼비 섬’(蟾)에 얹혀 전한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두꺼비가 산란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때가 이즈음이다. 두꺼비가 도로에서 가장 많이 목숨을 잃는 때이기도 하다.

첫 단추를 잘못 채워 단추를 모두 푼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재난의 역사를 살펴보면, 추모와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가지런하게 진행되기보단 뒤섞인 채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혼란스러울 때는 길 위에서 떨고 선 목숨부터 잊지 않고 먼저 품어야 한다.

서울시는 지난 9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이태원 참사 분향소 설치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이튿날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문항은 ‘최근 이태원 참사 분향소 설치에 대한 이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귀하께서는 광화문광장 또는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였는데, 서울시민 1007명 가운데 37.7%가 찬성하고 60.4%가 반대했다고 한다.

여기서 상기할 점은, 서울시가 국가애도기간인 2022년 10월31일부터 11월5일까지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이미 서울광장에 설치·운영했다는 것이다. 그때는 찬반 여론조사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것인가.

지난 6일에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신자유연대를 상대로 낸 분향소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유가족이 분향소 설치를 근거로 녹사평역 광장을 배타적으로 사용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녹사평역 광장은 ‘장례식장이나 추모공원처럼 오로지 유가족이나 추모객들이 경건하고 평온한 분위기에서 고인에 대한 애도를 할 수 있는 장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반문하고 싶다. 녹사평역 광장이 고인들을 애도할 만한 장소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이태원 골목은 159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을 만한 장소인가. 상상하기 힘든 참극이 골목에서 일어나 억울하게 시민들이 희생당했기에, 참사 현장에서 가까운 광장에 분향소가 마련된 것이다. 튀르키예 지진이 일어난 뒤 죽은 딸의 손을 놓지 못하는 아버지처럼, 이태원 참사 유가족도 녹사평역 광장에서 망자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골목과 광장은 이어져 있다. 이런 사정을 헤아린다면, 녹사평역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광장은 그곳에 모이는 이들의 바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장례식장이나 추모공원처럼 애도하는 곳은 아니지만 애도하는 곳이다. 야구장이나 축구장처럼 응원하는 곳은 아니지만 응원하는 곳이다. 그 무엇도 아니지만 그 무엇이다. 추모공간으로 내어줄 수 없다는 서울광장도 지난해엔 추모공간이었다. 녹사평역 광장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그 광장에서 추모만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추모하고자 모인 유가족과 시민을 배려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다.

서울시가 보도자료까지 낸 여론조사는 참사와 관련한 문제들을 장소 사용의 문제로 단순화한다. 광장을 둘러싼 대립의 본질은 추모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어떻게 해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참사 직후 정부와 서울시는 추모의 형식과 내용을 유가족들과 충분히 의논하고 세심하게 살폈어야 했다. 유가족들이 각자 장례를 치른 뒤 모이기도 전에, 서울광장을 추모공간으로 둔 국가애도기간이 끝나버렸다. 그때는 정부와 서울시가 나섰지만 유가족들이 동의하고 참여한 추모가 이뤄지지 않았고, 지금은 서울시가 동의하지 않지만 유가족들이 서울광장으로 나왔다.

이 간극을 법의 잣대로 메우려 들면 안 된다. 서울시는 여론조사 수치를 홍보할 때가 아니라, 광장의 절규와 위로가 더 필요하다는 유가족과 깊이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녹사평역 지하 4층을 추모공간으로 권하면서 서울광장을 불허하는 방식은 유가족을 궁지로 내모는 것이다. 장소를 따지기 전에 그 마음을 거듭 헤아려야 한다. 유가족이 광장에 머무르려는 것은, 잊히지 않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추모하기 위함이다. 지하 4층에서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아무도 참사 책임을 지지 않은 채 흘러온 지난 넉달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두꺼비들에게 도로를 건너지 말고 돌아가라거나 차가 없을 때 건너라거나 혹은 차보다 빨리 움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차도로 써왔지만, 차들이 다른 길로 우회하거나 두꺼비만큼이나 느리게 조심조심 그 도로를 지나가야 한다. 길 위에서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를 추모하는 마음도 이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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