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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우크라 전쟁 1년, 한국전쟁 70년… ‘21세기 애치슨 라인’은 [아침햇발]

등록 2023-02-19 13:31수정 2023-02-20 02:49

16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숨진 병사의 장례식을 마친 뒤 한 여성이 전사자들의 무덤 사이를 걸어오고 있다. 하르키우/AP 연합뉴스
16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숨진 병사의 장례식을 마친 뒤 한 여성이 전사자들의 무덤 사이를 걸어오고 있다. 하르키우/AP 연합뉴스

박민희 | 논설위원

우크라이나의 빼앗긴 들에 러시아의 ‘봄 대공세’가 다가오고 있다. 24일로 러시아가 침공한 지 1년이 되지만,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선에 육군 병력의 97%를 투입해 ‘인해전술’로 밀어부치며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한뼘의 땅도 내주지 않겠다는 자세로 필사적으로 맞선다. 전선은 피와 고통이 가득한 교착 상태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나아갔던 한국과 유엔군이 중국군의 참전으로 다시 밀리면서 이후 양쪽이 휴전선 인근에서 고지전을 벌이며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던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 김일성은 1952년 무렵부터 전쟁을 끝내길 원했지만, 소련의 스탈린은 계속 싸우라며 종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유럽에서 미-소간 전쟁도 벌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고, 미국의 군사력을 한반도에서 최대한 소진시킴으로서 소련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1953년 3월5일 스탈인이 숨진 이후에야 소련의 정책이 바뀌었고, 그해 7월27일 휴전협정이 맺어졌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속국화’해 ‘러시아 제국의 위대한 부흥’을 시작하겠다는 야심으로 침공을 감행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결사적 항전, 그리고 서방의 군사 지원에 밀려 예상 밖으로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인구 3배, 경제 규모 9배의 핵강국 러시아에게 군사적으로 완승을 거두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한국전쟁처럼 우크라이나 땅이 분단된 채 휴전 또는 종전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한국전쟁 상황을 되돌아보면 이마저도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다.

한국전쟁에서 협상의 열쇠를 스탈린이 쥐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요한 열쇠를 들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나 중국 전략가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최대한 힘을 소진하고, 러시아가 중국에 깊이 의존하게 만드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삼고 있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중국은 미국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러시아와의 공조 전선을 유지하면서도, 중국 기업들이 제재에 저촉되어 서방 시장을 잃지 않도록 세심한 양면작전을 펴왔다. 러시아의 원유와 자원을 값싸게 구매해 이익을 챙기는 한편 러시아가 제재에서 버틸 수 있도록 했다. 스탈린이 유럽에서 벌어질 미-소 전쟁을 대비했던 것처럼, 시진핑 역시 대만해협에서 미-중 대결이 벌어질 경우를 염두에 두고 한수 한수 포석을 두고 있다.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정치국위원이 곧 러시아를 방문해 시진핑 주석의 러시아 방문 등을 논의한다. 러시아에 유일하게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중국은 어떻게 움직일까. 미-중 패권 경쟁, 대만 문제, 동아시아의 미래 질서와 긴밀하게 얽힌 강대국들 간의 복잡한 수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열린 휴전협정 조인식.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왼쪽)과 공산군 수석대표 남일 대장이 서명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열린 휴전협정 조인식.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왼쪽)과 공산군 수석대표 남일 대장이 서명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는 국제질서의 미래에도 중요한 함의를 가지게 된다. 결국 미·중·러 강대국 간의 거래와 타협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도 어느 시점에서는 ‘고통스러운 선택’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여기서 적어도 한국 ‘진보’의 입장은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을 과소평가하고 ‘러시아와 어서 타협하라’는 주장만 앞세우는 것이어선 안된다. 강대국의 일방주의가 관철되지 않고 우크라이나인들의 주권과 자결권이 최대한 존중되도록 연대해야 한다. 강대국들이 팽창 논리로 나아갈 때마다 ‘충돌의 단층선’에서 어려움을 겪어온 한반도도 결국은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성균중국연구소가 주최한 우크라이나와 한반도에 대한 토론회에서 차태서 성균관대 교수는 “현실주의 논리에 따르면, 미국은 충돌이 벌어질 때 어디까지 지키고 어디는 포기할 것인가를 선택하게 된다. ‘21세기 애치슨 라인’은 어디에 그어지게 될까, 한반도, 대만, 우크라이나 등 강대국 세력의 접경지대에 있는 이들에게는 매우 두렵고, 중요한 문제가 된다”고 했다.

세계는 제국들의 충돌과 약육강식 시대로 나아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경제적으로도 중국-러시아와 미국 모두 진영화와 보호주의로 움직이면서,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의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며 위협하고 있다. 모든 변수들이 한국에는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계간지 <동향과 전망> 최신호에서 한국 사회가 ‘삼중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한국 경제, 정치가 계속 잘 유지되고 전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흔드는 질서의 변화, 둘째는 이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위기, 셋째는 변화를 제대로 분석할 사상의 부재다. 정전 70년 만에 닥쳐온 복합 위기의 폭풍 앞에서, 색깔론과 증오에 빠진 정치, 상대 진영을 적대시하며 갈라선 사회만 보인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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