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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현석의 팔레트] 다음 소희

등록 2023-02-19 18:08수정 2023-02-20 02:37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이현석 | 소설가·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지난 일요일에 친구와 극장에서 만났다. 영화 <다음 소희>를 보기 위해서였다. 저녁때라 친구가 샌드위치를 가져왔고, 한 조각씩 나눠 먹은 우리는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엘지(LG)유플러스 고객센터 실습생 고 홍수연양 사망사건 및 동일한 콜센터에서 같은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고 이문수씨 사건에 기초하고 있다.

영화는 시간 순서에 따라 소희가 겪은 지리멸렬한 시간을 기교 없이 받아낸다. 언어가 인간의 영혼을 짓이기는 장면들이 덤덤히 흘러가는 동안 소희 안에 생긴 먹구름은 짙어지기만 한다. 그러다 소희는 한 줄기 빛을 보는데 그 물리적인 ‘빛’을 보고 얼마 있지 않아 소희의 시간이 툭, 끊긴다. 저수지로 들어가는 소희의 뒷모습에는 어떠한 스펙터클의 징조도 없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절반이다.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는 저수지를 원경으로 비춘다.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도열한 화면 왼쪽에서 담당 형사 유진이 조그맣게 등장한다. 원경처럼 시신을 무심하게 살핀 유진은 단순 변사로 사건을 종료하려 한다. 하지만 소희가 일했던 콜센터에서 또 자살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유진은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직감한다. 문제를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유진의 분노는 서서히 끓어오른다. 분노는 강박적으로 사건에 몰입하도록 만들지만 그는 어딘가에 계속 부딪힌다. 그것은 벽이다. 피해자 탓을 하면서 원청회사든, 하청업체든, 학교든, 교육청이든 어느 곳 하나 책임지지 않아도 문제가 없게끔 지어진 견고한 벽.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정밀하게 설계한 것이 아니라 자본의 욕망이 켜켜이 쌓아올린 벽. 그 벽이 유진을 향해 사방에서 다가온다.

완강한 벽의 존재를 유진이 끝내 실감하는 순간, 그는 사건에서 손을 놓는다. 동시에 어두운 상영관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로 마지막 장면까지 지켜본 친구와 나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극장 내부가 환히 밝혀지고서야 우리는 숙였던 허리를 폈다. 붉어진 친구의 얼굴에는 미처 닦지 못한 눈물자국이 묻어 있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극장 밖으로 나오니 주말은 아직 끝나지 않아 밤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선연한 고통을 마주한 직후였음에도 허기가 몰려오는 것 또한 어쩌지 못할 인간의 일이었다. 근처 시장에 칼국수를 먹으러 가면서 우리는 무력감을 이야기했다. 친구와 나는 다른 일을 하지만 사연 있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는 공통점이 있어, 무력감의 사전적 정의 그대로 ‘스스로 힘이 없음을 느끼면서 허탈해’졌던 때의 일을 서로 나눴다. 그러다 문득 친구가 분통을 터트렸다. “사람들은 위를 보는 일에만 익숙해져 있어. 위를 쳐다보게 만드는 매체가 너무 많잖아. 뉴스며, 드라마며, 인스타그램이며 온통 잘난 사람, 있는 사람, 있어 보이는 사람들만 보게 해. 그 반대 경로는 거의 사라져버린 것 같아.”

친구와 나란히 걷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그러했다. 어느 때인가부터 계급적이지 않은 것이 곧 문화적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연대는 멸종위기종이 됐고, 고립 속에 좌절한 사람들은 절망감을 저보다 약해 보이는 이에게 모멸적으로 투사한다. 이러한 시대상을 두고 파울 페르하에허는 새로운 도덕의 기준이 ‘성공’이라면 실패자는 ‘비도덕적인 인간’이 된다고 했다. 시장이 비도덕적 인간의 서사에 눈을 돌리는 만큼, 시장화된 개인들이 이입할 수 있는 폭도 협소해진다. 위만 쳐다보도록 만든 채 목뼈를 고정시켜버리는 문화 속에서 <다음 소희>는 귀하다. 최소한 두 명의 관람객은 무력감에 빠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민을 이어가게 됐으니까. 영화를 보고 나면 같은 마음이 될 것이다. 여러분께 이 영화의 관람을 권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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