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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국민연금, 재정안정화가 능사가 아니다

등록 2023-02-19 18:08수정 2023-02-20 02:39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입구에 ‘국민을 든든하게 연금을 튼튼하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입구에 ‘국민을 든든하게 연금을 튼튼하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미래를 대비해야 할 개혁 논의가 철 지난 과거의 패러다임에 매몰되어 있다. 국민연금 개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부의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결과가 발표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적이라는 언론조차도 청년세대가 연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자극적인 보도와 칼럼을 쏟아냈다. 심지어 어떤 언론사는 “국민연금, 몇년생부터 못 받나?”라는 황색언론이나 사용할 법한 선정적인 제목을 뽑기도 했다. 국민들이 국민연금 폐지 운동이라도 나서길 바라는 사람들처럼.

하지만 국민연금이 정치·경제의 흐름과 무관한 제도가 아니라면, 국민연금을 재정균형이라는 고립적인 자기 완결적 논리로만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재정안정화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국민연금을 보다 더 큰 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실 어떤 오류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전문가들도 지난 수십년 동안 자신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교육받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를 주도했던 밀턴 프리드먼도 1960년대에는 자신을 케인스주의자라고 불렀던 것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는 이념과 관계없이 지난 수십년간 신자유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넓게 보면 사회보장제도)을 수지 균형이라는 재정안정성 측면에서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도 그 근원을 따라가 보면, 공적 복지의 확대가 재정적자의 원인이며 성장의 걸림돌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재정균형 담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국민연금의 재정균형을 세대 간 형평성이라는 논리로 포장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그 신자유주의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보듯 긴축적인 통화정책과 확장적인 재정정책이라는 모순적인 정책이 동시에 실행되는 현상을 체제 전환 시기의 특성이라고 진단했다. 즉, 재정균형과 인플레이션 통제를 중시했던 신자유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면, 연금 개혁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을 ‘재정안정화’라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한 사회의 생산과 소비의 순환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민연금의 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국민의 가처분소득을 줄여가며 과도한 기금을 쌓아두는 것보다, 정부가 국민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보험료를 일부 인상하는 것은 불가피하겠지만, 국민연금이 명실상부하게 서민과 중산층의 노후소득 보장 수단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더욱이 정부가 제5차 재정추계 시산결과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국민연금 재정의 위기가 “저출산·고령화의 심화와 경기 둔화의 영향”이라면, 재정안정화를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45%에 이르는 1000조원을 기금에 쌓아놓고 비생산적인 금융상품에만 투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를 청년에게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혁신 성장과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사회경제적 인프라를 확대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당장은 기금 소진 시점이 앞당겨질 것이다. 그러나 청년이 양질의 교육을 받고 혁신역량을 갖추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끈다면, 2080년 지디피의 10% 수준인 연금 지출은 막대한 기금을 쌓아두지 않아도 우리 경제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미-중 패권 갈등에서 보듯 과거와 같은 세계화가 지속할 것 같지 않다. 세계경제의 생산과 거래는 점점 더 블록화하면서 자국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과거와 같이 수출에 경도된 성장전략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없다. 최근 급격히 둔화하고 있는 수출 증가율은 이런 변화를 알리는 전조이다. 결국 우리가 맞이할 세계는 과거보다 내수가 더 중요한 사회가 될 것이다. 국민연금이 노인의 적절한 구매력을 보장해 내수를 지키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가 변한다면, 우리가 만들었던 제도도 변해야 하고, 그 의미와 목적도 변해야 한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이다. 언제까지 철 지난 80, 90년대 신자유주의 이념에 매달려 다가올 체제전환에 대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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