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대의 컴퓨터전공 4학년생 에드워드 톈이 개발해 공개한 ‘지피티제로(GPTZero)’.
[편집국에서] 김원철 | 디지털미디어부문장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하나 구했습니다. 원하는 주제만 넣으면 자동으로 글을 써준다는 마법의 시트입니다. ‘○○을 주제로 글을 써달라’고 첫칸에 적으니 조건에 맞춘 글이 금세 옆칸에 완성됩니다.
비결은 인공지능(AI) 챗봇, ‘챗지피티’(ChatGPT)입니다. 이 시트는 지피티 함수를 통해 챗지피티와 연동돼 있습니다. 시트를 제작해 공유한 유튜버는 이 방식을 발전시켜 블로그를 개설했습니다. 블로그에 쓸 인기 있는 주제 100개를 챗지피티가 골라줬고, 글을 써줬고, 해시태그를 만들어줬고, 함께 활용할 대표 이미지도 찾아줬습니다. 약간의 품을 들여 자동화 도구와 연결하니 블로그에 자동 발행까지 됩니다. 양식을 일단 완성하자 그는 2, 3분 만에 엔터키 한번으로 수십편의 그럴싸한 글을 블로그에 발행했습니다. 비용은 몇백원 정도였죠.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수천, 수만개의 글을 발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성됐습니다. 챗지피티 덕분입니다.
대부분의 글은 본질적으로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묻고-답하기’ 즉, ‘궁금증과 글’의 관계는 인터넷 검색 엔진의 ‘검색어-검색 결과’의 관계와 닮았습니다. 자동 발행된(될) 수천(수만)개의 글은 어떤 궁금증에 대한 답변일 겁니다. 일부 조악한 답도 있습니다. 그러나 ‘글’을 내놓았다는 게 중요합니다. 어느 누구도 세살 아기에게 ‘아직 이것도 못 하느냐’라고 지적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낼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이제까지의 검색은 질문에 맞는 단편적인 정보(문서)만 제공했습니다. 개별 정보(문서)를 취합하고, 판단하고, 종합해야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언론은 검색의 시대에도 여전히 한자리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언론은 검색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을 궁리하고, 그에 합당한 정보를 취합·종합·해석하는 역할을 자처해왔습니다.
‘저널리즘은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찾고, 누군가 만나 이야기를 듣고, 허구에서 사실을 가려내는 것이 저널리즘이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공개된 수많은 정보 중에서 뭔가를 알아채고, 맥락을 부여하고, 해석하는 역할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저널리즘의 몫입니다.
이 영역에서 저널리즘은 챗지피티와 경쟁합니다. 인간 지피티인 기자와 달리 챗지피티는 실시간 답합니다. 전자가 ‘대규모 생산’이라면, 후자는 ‘1인 맞춤형 생산’입니다. 아직은 인간 지피티의 결과물이 질적으로 우위에 있지만 말입니다.
웹사이트 ‘GPTZero’(지피티제로)는 인공지능이 쓴 글인지 감식해주는 사이트입니다. 인간이 친 방어막인 셈이죠. 설립자 에드워드 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들에게 조사하고, 생각하고,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전통이 완전히 무너질 것입니다.”
동의합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에게 빨래하는 법, 땅 가는 법, 밥 짓는 법을 가르치는 전통이 완전히 무너질 것입니다”라며 세탁기를, 농기계를, 전기밥솥을 거부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2023년의 우리가 코웃음 치듯 미래세대는 지피티제로를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기록하지는 않을까요.
‘실리콘밸리 연쇄창업가’ 아짐 아자르는 저서 <기하급수의 시대>에서 오늘날 세계가 기하급수적 변화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기하급수적 변화는 인간이 직관적으로 결과를 짐작하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0.1㎜ 두께의 신문지를 50번 접으면 얼마나 두꺼워질까요?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의 70%와 같아집니다. 직관적으로 떠올리기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하급수적 변화입니다. 인공지능은 이런 속도로 똑똑해지고 있습니다.
딥러닝은 뭐든지 학습합니다. 데이터(경험)를 주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패턴을 발견해냅니다. 규칙을 발견해 업무를 익힌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하루 일과 중 패턴화된 업무가 무엇인가요? 그 일부터 대체될 것입니다. 세탁기에 빨랫감을 던져주듯 무심하게 ‘기계의 몫은 기계에게’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을 겁니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인간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다”라는 말처럼 어떤 이는 적응해내고, 어떤 이는 도태되겠죠. 너무 큰 상처는 남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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