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6일(현지시각) 폴란드 메디카 국경검문소 인근 쉼터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추위를 피하고 있다. 메디카/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특파원 칼럼] 노지원 | 베를린 특파원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3월 초, 국경을 넘는 피란민을 만나러 폴란드로 향했다. 당시 피란민은 이미 130만명을 넘어섰다. 그로부터 1년, 피란민은 개전 초보다 10배 이상 많아진 1400만명에 달한다.
폴란드에서 만난 두 딸의 엄마 안나는 3월 말 우크라이나군이 키이우를 되찾은 뒤 집으로 돌아갔다. 북동부 하르키우에서 온 율리야는 아직 딸과 함께 독일에 남았다. 아군이 지난해 9월 하르키우를 되찾은 뒤에도 러시아군이 거센 포격을 퍼부으며 사상자를 내고 있어서다. 정부가 무너진 도시를 복구 중이지만 오늘도 하르키우에서만 3만5천명에 달하는 시민이 전기 없이 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접경을 취재하고 한달쯤 지난 작년 4월 전세계는 러시아가 키이우 외곽 부차에서 저지른 대학살을 목격했다. 모두 할 말을 잃었다.
6월에야 뒤늦게 부차, 이르핀, 보로댠카 등 러시아군이 짓밟고 간 도시를 찾았다. 러시아군에 납치됐다 겨우 풀려난 드미트로, 미사일 공격에 무너진 아파트에서 두 딸과 목숨을 건진 옥사나, 적군의 총알이 허벅지를 관통한 발레리. 시민에게 전해 들은 끔찍한 기억은 내일 다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현재 진행형의 전쟁이었다.
휴대전화엔 아직도 지난해 3월 부차 학살 때 차에서 죽은 모자의 사진이 남아 있다. 엄마는 모로 누워, 아들은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떨군 채 차갑게 식어 있다. 텔레그램 메신저에는 오늘도 잔인하게 죽임당한 이들의 사진이 올라왔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은 21일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상자가 최소 2만1293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중 어린이는 1441명이다.
지난해 10월 러시아군은 추운 겨울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전역의 에너지 기반 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시작했다. 키이우에 사는 친구들은 “3월엔 공포에 떨었지만, 이젠 추위에 떨게 생겼다”고 했다. 사나흘은 기본, 심한 경우 일주일 동안 물·전기·난방 없이 지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2월 현재 1800만명이 인도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연말 연초, 키이우를 다시 찾았다. 한해 마지막날, 새해 첫날, 시도 때도 없이 공습경보가 울렸다. 낮에는 미사일이 떨어지는 굉음, 밤에는 우크라이나군이 미사일을 요격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방금 전 공습으로 무너져내린 건물이 보였다. 내겐 일주일의 ‘악몽’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겐 1년 내내 계속된 ‘일상’이었다.
1년 동안 기자로서 목격한 전쟁은 영화, 소설보다 잔인한 현실이었다. 수천,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끔찍한 전쟁. 안나와 율리야, 드미트로, 옥사나, 발레리… 우크라이나 시민은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을 버틴다.
그런데 일각에선 ‘평화’를 위해 이제 타협을 해야 한다 주장한다. 어차피 러시아를 이길 수 없으니 일부 땅을 떼어주고 끝내자는 거다. 12월31일 키이우 도심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전 고위 관계자가 “크림반도를 그대로 두면 2년 뒤 러시아가 재침공할 거고, 크림을 되찾으면 20∼30년은 평화로울 수 있을 것”이라 한 말이 떠오른다. 타협으로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21일 우크라이나 비정부 연구기관 ‘레이팅’은 우크라이나 시민 95%가 승리를 확신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올해 뮌헨안보회의 보고서는 ‘우크라이나인 89%가 러시아가 핵무기를 써도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 의지가 올해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바꿀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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