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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노조는 악, 청년은 선’…윤 대통령의 위험한 갈라치기 [성한용 칼럼]

등록 2023-02-27 16:29수정 2023-02-28 02:37

우리나라 보수 기득권 세력은 계급의 문제를 매번 다른 쟁점으로 물타기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에는 불평등 해소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을 갈라쳤다. 최근에는 세대와 젠더를 갈라치기 시작했다. 귀신같은 솜씨다.
2022년 7월26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 도중 포착된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텔레그램을 주고받는 휴대전화 화면. 공동취재사진
2022년 7월26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 도중 포착된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텔레그램을 주고받는 휴대전화 화면. 공동취재사진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요즘 세상은 타락하고 있다. 뇌물수수나 부패가 흔하다. 아이들은 더는 부모 말을 듣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책을 쓰고 싶어 한다. 세상의 종말이 분명히 다가오고 있다.”

기원전 2800년께 아시리아 태블릿에 나오는 글이다. 최근 출판된 <금리의 역습> 서문에 소개됐다.

“요즘 국회의원 수준이 너무 낮다. 옛날 의원들은 그래도 품격이 있었다.”

나이 든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착각이다. 국회의원 수준이나 품격은 옛날보다 많이 높아졌다. 변한 것은 의원들이 아니라 의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나이다.

‘옛날 의원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요즘 의원들’은 ‘나’보다 나이가 어릴 뿐이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면 일단 아래로 보인다. 인간의 속성이다.

논쟁에서 밀릴 때 나이로 찍어 누르려는 사람은 꼰대다. 꼰대는 비열하지만 그래도 귀여운 구석이 있다. 세상에 큰 해악을 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세대를 분열시키는 위정자는 사악하다. 세대 분열은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마오쩌둥이 그랬다.

1950년대 말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마오는 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관습을 타파해야 한다는 4구(舊) 타파 운동을 벌였다. 학생들을 부추겼다. 전국적으로 홍위병이 결성됐다. 홍위병은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고전을 불태우고 지식인들을 처형했다. 중국에는 지금도 21세기 홍위병으로 불리는 ‘분노청년’이 있다.

2021년 6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이런 말을 했다.

“천안함 청년 전준영은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케이나인(K-9) 청년 이찬호는 억울해서가 아니라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책을 썼습니다.”

“정부 부채 급증으로 변변한 일자리도 찾지 못한 청년 세대들이 엄청난 미래 부채를 떠안았습니다. 청년들이 겨우 일자리를 구해도 폭등하는 집값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좌절은 대한민국을 인구 절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 실패의 피해자 자격으로 청년들을 호출한 것이다. 호소력이 있었다. 청년층은 모든 나라, 모든 정권의 약점이다.

윤석열 후보는 대선 캠페인도 20~30대에 초점을 맞췄다. 엠제트(MZ) 세대를 의인화한 ‘민지야 부탁해’ 영상을 만들었다. 윤석열 후보가 책상을 쾅 치고 일어나 “야, 민지가 해달라는데 한번 좀 해보자. 같이 하면 되잖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꼰대의 애교와 진정성이 돋보였다.

기세가 오른 윤석열 후보는 세대 갈라치기에 젠더 갈라치기를 섞었다. 20대와 30대 남성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이준석 대표가 한몫 단단히 거들었다. 결국 윤석열 후보는 20대와 30대 남성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준석 대표를 내쫓았다. 20대와 30대가 등을 돌렸다. 국정 지지율이 폭락했다.

그랬던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청년층을 다시 호출하고 있다. 이번에는 ‘강성 기득권 노조’의 피해자 자격이다.

지난 20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을 보고받고 “기득권 강성 노조의 폐해 종식 없이는 대한민국 청년의 미래가 없다”고 했다. 21일 건설 현장의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 행위’ 실태와 대책을 보고받고 “노조 기득권은 젊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하는 약탈 행위”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은 ‘노조는 악, 청년은 선’이라는 이분법이다. 전형적인 보수 기득권 세력의 궤변이다.

노조가 개혁을 게을리한 잘못은 있겠지만 정말로 기득권 집단일까? 노조는 늙은 사람들만 가입했을까? 사용자는 청년들 편일까? 논리적으로 종잡을 수가 없다.

<중앙일보>는 지난 22일치에 ‘거대 강성 노조 개혁 없이 미래는 없다’는 큰 제목으로 사설 세편을 한꺼번에 실었다. “남의 일자리 봉쇄하고 뒷돈까지 받은 무법 노조” “야당은 불법파업 손배 힘들게 할 ‘노란봉투법’ 강행” “젊은 세대의 새로운 노조 문화, 희망을 본다”라는 제목이다.

우리나라 보수 기득권 세력은 계급의 문제를 매번 다른 쟁점으로 물타기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에는 불평등 해소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을 갈라쳤다. 최근에는 세대와 젠더를 갈라치기 시작했다. 귀신같은 솜씨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앞날이 걱정이다.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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