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정부가 내라고 한 노조회계 증빙서류 속지 중) 아무 종이나 한장이 30억원(국고보조금)짜린데 그냥 내고 실익을 취하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어차피 조합원들한테 다 공개되는 자료니까요. 다만 노동조합의 투명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조를 ‘부패 집단’으로 낙인찍겠다는 정부 의도가 분명한 만큼 자주성을 훼손시키는 압박에 굴복할 수 없습니다.”
지난 23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실에서 만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크게 의미 없는 종이 한장을 왜 제출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합비 회계장부를 꺼내 보였다. 노조 회계장부 내지 미제출을 이유로 한 국고보조금 지원 중단, 윤석열 대통령의 ‘건폭’(건설현장 폭력) 발언 등 양대 노총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제1노총이자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며 노사정 대화의 한 축을 맡은 한국노총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지난달 17일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연임한 김 위원장이 두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한겨레>와 첫 언론 인터뷰에 나선 이유다. 김 위원장은 ‘노동개혁’을 표방하는 정부 노동정책이 “구태의연하다”고 비판하면서도, 노조 또한 “책임지고 내려놓을 부분은 내려 놓겠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건설노조의 협박·강요·갈취를 강조하며 ‘건폭’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노조의 자정 노력도 필요한 것 아닌가?
“지난해 7월 한국노총 역사상 처음으로 (조합비 횡령, 비민주적 노조 운영 문제 등이 불거진) 건설산업노조를 회원조합에서 제명했다. 노조의 자정 노력만으로 한계가 있으니 정부가 나서서 불법 행위를 엄단하는 것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노사는 양면거울 같다. 노동자의 불법 이면에 기업의 문제가 있다. 건설현장엔 불법 하도급을 통한 중간착취가 만연해 있다. 산재 사망 사고의 절반 이상이 건설현장에서 나온다. 오로지 노조를 불법 집단으로 낙인찍기 위한 의도로만 건설현장 불법 행위를 이야기하지 말고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의 노조에 대한 공세가 이어지는 배경엔,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 또한 자리잡고 있다. 그 원인을 어떻게 보나?
“임금인상 같은 이익 투쟁에 집중하면서 사회 전반의 문제를 돌아보지 못한 책임도 있다. (조합원은) 실질적으로 힘 있는 노동자들이니 (노조) 밖에서 보기에 박탈감도 있을 수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이지만, 노동계 내부에서 먼저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고 내려놔야 할 부분은 내려놓자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통과나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완전 적용을 요구하고, 한국플랫폼 프리랜서 노동공제회를 만들어 노조 바깥의 노동자를 위한 활동에 집중하는 이유다.”
―정부의 노동개혁 또한 ‘미조직·취약계층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는 표현 속에 이뤄지고 있다
“표현만 그럴 뿐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예를 들어 노동시간 유연화의 경우 그 피해는 조직된 노동자보다 노동조합이라는 최소한의 힘도 갖고 있지 못한 조직 바깥의 노동자가 더 많이 본다. 정부는 노동자에게 노동시간 선택권을 주는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자기 표현도 하기 힘든 수많은 노동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성과급제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파견 허용 범위 확대도 마찬가지로 노동조합 바깥 노동자가 더 큰 피해를 본다. 노동자를 갈라치고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없어지면 취약 노동자의 삶이 나아질까. 정말 그런 확신만 있다면 굴복하겠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노동을 지나치게 경쟁과 효율의 문제로 접근한다. 노동자를 헐값에 저항 없이 쓸 수 있도록 하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그 안에서 노동자들이 느끼는 상실감이나 모멸감에는 관심이 없다. 국가경쟁력 면에서도 장시간 노동, 무한 경쟁 같은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확보된 경쟁력이 지속 가능한가. 너무 낡은 방식이다.”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사회적 대화 참여가 점점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중단 계획이 있나?
“사회적 대화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유효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단절하고 싶지 않다. 다만 노동을 이렇게 공격하고 압박하며 정책을 관철시킬 도구로 활용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의제가 중요하다. 지금처럼 과거로 회귀하는 의제로 대화할 순 없다. 인구 감소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산업 전환 속 벼랑 끝에 놓인 노동자를 어떻게 책임지고 보호할 것인지, 노사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어떻게 공적으로 메울지 논의하지 않으면 갈등 사회는 더 심각해진다. 이런 의제를 마음 열고 논의하자는 것이다. 우리 요구만 하겠다는 생각도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하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각자 어디까지 내려놓고 책임질 것인지 이야기해야 한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