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대 대중음악상은 그래미 뮤직 어워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빌보드 뮤직 어워드다. 이 가운데 1959년 시작한 그래미는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이름은 축음기를 뜻하는 ‘그라모폰’에서 따왔다. 트로피 역시 축음기를 본떠 만들었다. 그래미는 가수, 프로듀서, 녹음 엔지니어, 평론가 등이 모여 만든 음악 전문가 단체인 리코딩 아카데미가 매년 개최한다.
이런 그래미는 보수적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카녜이(카니예) 웨스트, 비욘세, 드레이크, 켄드릭 라마 같은 아티스트가 주요 부문 수상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시자 “그래미는 흑인 아티스트를 홀대한다”며 ‘화이트 그래미’란 오명을 받았다. 2021년 63회 그래미에선 더 위켄드가 본상은커녕 장르 부문까지 단 한곳에서도 후보에 오르지 못하자 시상식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음악 장르에서도 눈에 안 보이는 차별은 있었다. 댄스, 힙합 가수는 후보에 오르더라도 상을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이런 그래미가 달라졌다. 지난 2월5일(현지시각) 열린 65회 그래미 시상식은 소수자와 다양성이 눈에 띄었다. 이날 수상식 공연 무대를 연 건, 컨트리 가수 브랜디 칼라일이었다. 레즈비언인 칼라일의 동성 아내는 입양한 두 딸과 함께 시상식에 나와 칼라일을 소개했다. ‘논바이너리’(성별 구분에서 벗어난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라고 커밍아웃한 팝스타 샘 스미스와 트랜스젠더 싱어송라이터 킴 페트라스가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에서 상을 받았다. ‘올해의 레코드’ 부문에서 상을 받은 리조는 마른 몸, 밝은 피부의 팝스타와는 결이 다른 가수다. 리조는 어느 정도 체중이 있지만, 자기 몸의 긍정과 당당한 자존감을 담은 메시지로 노래를 불러왔다. 올해 처음 신설된 ‘베스트 송 포 소셜 체인지’는 이란 히잡 시위를 지지하는 노래 ‘바라예’를 온라인에 올렸다가 체포된 이란의 싱어송라이터 셰르빈 하지푸르가 받았다.
보수적이던 그래미에서 이런 변화의 바람이 계속 이어질지는 관심거리다. 그래미가 사회 변화에 발맞추고 있다는 시각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미국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정권 입맛에 맞췄다는 시각도 있다. 이런 비판이 나오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공화당 출신 도널드 트럼프가 정권을 잡았을 땐 백인 남성 위주의 편파성으로 비판받았기 때문이다.
정혁준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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