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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누가 아이 낳으라 말할 수 있나

등록 2023-03-09 18:32수정 2023-03-10 02:35

특성화고 현장실습피해자 가족모임이 2021년 10월20일 여수에서 고 홍정운군 유족을 위로 방문한 뒤 실습생 제도를 폐지하자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특성화고 현장실습피해자 가족모임이 2021년 10월20일 여수에서 고 홍정운군 유족을 위로 방문한 뒤 실습생 제도를 폐지하자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삶의 창] 김소민 | 자유기고가

나는 아이가 없다. 내 장례 치러줄 사람 없을까 두렵지만, 다행이다. 한국에서 내 아이의 존엄을 지킬 자신이 나는 없다.

2017년 11월 생수공장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특성화고 학생 이민호(당시 18살)군이 포장기계에 끼여 숨졌다. 민호가 친구에게 보낸 카톡엔 이렇게 쓰여 있다. “아직 고딩인데 메인 기계 만지는 것도 극혐인데 기계 고장 나면 내가 수리해야 됨. 야근은 덤이고.” 민호가 일하는 동안 기계는 세번 고장 났다. 두번째 고장 때 민호는 갈비뼈를 다쳤다. 그날 응급실에 갔다 다시 공장에 불려나갔다. 민호 전임자는 기계 고장을 몇번이나 보고하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민호가 들어오고 일주일 만에 퇴사했다.

회사가 아버지 상영씨에게 가져온 서류에는 사고가 민호 탓이라고 적혀 있었다. 민주노총 제주본부 소속 노무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넘어갈 뻔했다. 화물차를 운전하는 아버지는 민호가 숨진 뒤 운전대를 잡을 수 없었다. ‘핸들을 조금만 틀면 민호를 따라갈 수 있을 텐데….’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다음’ 민호들의 비극을 막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그런 그에게 교육청은 노동부로 가라, 노동부는 교육청으로 가라고 했다.(<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돌베개)

민호가 숨진 그해 1월 특성화고 학생 홍수연양은 현장실습생으로 전주 엘지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해지를 방어하던 ‘욕받이 부서’에서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호와 수연이가 죽고 4년 뒤, 2021년엔 18살 홍정운군이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여수 요트업체에서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떼다 숨졌다. 2인1조 잠수 원칙을 어기고 안전교육도 없이 잠수자격증이 없는 홍군에게 작업을 지시했던 업체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현장실습생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특례조항을 지난해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정부는 아예 ‘기업활동 위축’ 등을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 자체를 무력화하려 한다. 해마다 산업재해로 800여명씩 숨지는데도 말이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저자 허태준 작가는 공고를 나와 현장실습생과 산업기능요원으로 중소기업 공장에서 3년8개월 일했다. 수능시험이 끝나는 날, 여기저기 붙은 “수험생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수고하지 않은 걸까?’ 18살에 자격증을 여럿 따고 하루 10시간씩 일하며 가족을 도운 그는 그런 격려를 사회에서 받아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지하철역 앞에서 전단지 한장을 받는다. ‘위험의 외주화 중단하라!’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운반용 컨베이어벨트에서 하청노동자 김용균(당시 24살)씨가 숨진 뒤였다. 길에는 버려진 전단지들이 굴러다녔다.

허 작가는 이렇게 썼다. “도저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너무 쉽게 그것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의 손이었다. 똑같은 사람의 목숨 아닌가. 모두가 함부로 다뤄져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안전 조처가 지켜지지 않아 용균씨가 숨졌는데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와 법인은 무죄, 하청업체 전 사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민호, 수연이 또래의 한 아이는 검찰 고위직이었던 아버지가 대법원까지 끝장 소송을 벌인 덕에, 학교폭력으로 강제전학 처분까지 받고도 전학 가지 않고 1년을 버티다 서울대에 입학했다.

민호를 잃은 아버지 상영씨는 말한다. “대한민국은 부자가 아니면 애 낳고 키울 나라가 아니에요.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은 애 낳고 저세상으로 보내는 거예요.”(<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누가 이곳에서 아이를 낳으라 말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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