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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누가 ‘참여’를 아름답다 했는가

등록 2023-03-12 19:18수정 2023-03-13 02:36

연예팬덤이건 정치팬덤이건 스타나 정치인이 팬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팬에겐 팬덤이 제공하는 재미와 연대감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정치팬덤의 경우엔 한번 맛본 ‘정치적 효능감’의 마력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예정된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시민촛불연대 주최로 체포동의안 부결 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예정된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시민촛불연대 주최로 체포동의안 부결 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바보들의 통치에 당하고 살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다. ‘바보’나 ‘천치’를 뜻하는 영어(idiot)의 옛 그리스어 어원이 시민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사적 삶에 갇혀 지내는 사람을 의미했을 정도로, 참여는 늘 미덕으로 통용됐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정치에 깊은 관심을 보인 지식인들은 참여의 쇠퇴를 우려하고 개탄했다.

미국 철학자 존 듀이는 <공중과 그 문제들>(1927)에서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들이 다양하고 많아졌다는 것이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의 이탈을 불러온 큰 원인이다”라고 했다. 20여년 뒤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1950)에서 “어떻게 워싱턴이 할리우드 및 브로드웨이와 경쟁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썼다.

대중의 관심을 놓고 정치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경쟁하기엔 역부족이었기에 참여는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참여가 과잉이거나 계층·세대별 참여의 불균형이 나타날 경우 ‘정치적 양극화’ 등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는 ‘민주주의의 역설’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웹사이트의 콘텐츠 창출자는 전체 이용자의 1% 안팎이라는 ‘1% 법칙’이 나온 건 17년 전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그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연구팀이 2021년 8월1일부터 2022년 3월8일까지 포털 대선뉴스 댓글 3639만건을 분석한 결과, 댓글 80%를 유권자의 0.25%가 작성했으며, 댓글의 절반가량은 ‘정치적 혐오표현’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로 대변되는 디지털 혁명이 공론장을 같은 편끼리만 모이는 곳으로 재편한 가운데, 이른바 ‘집단사고’, ‘필터 버블’, ‘반향실 효과’ 같은 현상이 대중의 일상적 삶을 지배하면서 ‘확증편향’은 일반적인 상식이 되고 말았다. 타협을 적대시하면서 정치적 적(敵)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발산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와 더 화끈한 콘텐츠를 제공해달라는 수요가 폭증하면서 소통은 실현 불가능한 신기루가 돼갔다.

지난 대선 패배 뒤 민주당 후보였던 이재명의 팬덤으로 급부상한 ‘개딸’(개혁의 딸) 현상은 그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패배의 상처를 딛고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은 선거사무소에서 진행된 팬 카페 ‘재명이네 마을’ 서포터즈와의 미팅에서 ‘개딸’ 현상에 대해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행태”라고 했다. 당사자로서야 그렇게 감격해할 만한 점이 있었겠지만, 이재명의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뒤 이탈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하겠다고 나선 ‘개딸’들의 활약엔 많은 우려가 쏟아졌다.

예컨대, 민주당 의원 김종민은 이재명 대표 체제 민주당의 문제 중 하나로 ‘팬덤 정치’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 게 문제가 아니지만, 자기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 다른 사람이 자기 목소리 안 따라온다고 공격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또는 역적으로 몰아붙이고 증오하고 이거는 아닌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재명이 나서서 개딸 등 강성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당부했지만, 정치적 댓글을 선점해야 한다고 역설하던 그의 모습이 워낙 생생한지라 시늉에 불과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연예팬덤이건 정치팬덤이건 스타나 정치인이 팬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팬에겐 팬덤이 제공하는 재미와 연대감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정치팬덤의 경우엔 한번 맛본 ‘정치적 효능감’의 마력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유명한 ‘친민주당, 친이재명’ 카페에 올라왔다는 다음 증언이 말해주듯이 말이다. “남자 아이돌 덕질보다 이재명 덕질이 재밌다. 아이돌 소속사가 잘못할 땐 팩스 총공세를 벌여도 말을 듣지 않지만, 일주일 만에 10만명 당원 가입하고 문자 총공세 하니 민주당이 벌벌 떤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라는 가왕 조용필의 절규를 원용하자면, 이제 우리는 “누가 ‘참여’를 아름답다 했는가”라는 외침 또는 문제제기를 심각하게 고민해볼 때가 됐다. 증오와 혐오의 발산을 위한 참여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반드시 해야 할 고민이다. 우리 편의 참여는 아름답지만 반대편의 참여는 추하다는 이중기준도 버리자. 그간 정당과 정치인은 돈·시간·열정을 아낌없이 바쳐주는 강성 당원들이 너무도 고마워 그들 뜻에 따라 움직이곤 했다. 하지만 이젠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계속 간직하되 돈·시간·열정에 비교적 인색한 지지자들의 뜻도 존중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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